[예화이야기] 내 고향은 대한민국 순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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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1959-현재) 소장은 1959년 12월 8일 전주 예수병원에서 태어나 부모가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순천에서 성장했다. 형제는 5남 1녀 셋은 미국에서 낳았으며 셋은 한국에서 낳았다. 큰형 데이비드 린튼은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둘째형 스티븐 린튼은 유진벨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1990년 빌리그레이엄 목사의 통역 겸 고문으로 5년간 북한에 드나들며 김일성 주석을 세 차례 만났다. 셋째형 제임스 린튼은 건축사이며, 넷째형 엔드류 린튼은 금융계에서 근무하며, 인요한은 막내다. 그는 어렸을 때 개구쟁이로 자랐으며 어른들은 파란 눈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한국말을 잘 한다고 귀여워했다.

그가 의사가 된 동기는 순천에서 어머니가 결핵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고 초등학교 3학년에 결심하고 연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한국역사와 한자(漢字)가 너무 어려웠으며 의사 국가 시험에 한자문제가 힘이 들었다. 그 후 미국 의사자격을 얻기 위해 뉴욕에서 4년간 의사수련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의사로 근무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앰뷸런스를 개발해 보급했다. 그런데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자재를 싣고 가다가 음주운전 기사가 들이받아 의식불명으로 여수에서 광주기독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가족과 순천 일대 교인들과 주민들의 큰 슬픔이었다. 그는 선교사의 자녀로 자신의 재능과 기술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소명이라고 했다. 그는 1991년부터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있다. 그의 가정은 4대에 걸쳐 호남지역 선교의 아버지로 목포의 정명학교, 영흥학교, 광주의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기독병원 등을 세우는데 산파역할을 했다. 4대에 걸쳐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선교, 의료, 교육사역에 공헌한 린튼 가문은 우리에게 위대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김광식 목사

<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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