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찬양의 광기를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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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찬양의 선율이 주는 감각적 즐거움이 말씀의 의미를 가릴 때 그것이 치명적인 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노래의 아름다움 자체가 목적이 되어 영적인 감동보다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음악은 오직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도구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개혁의 의지는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뱅에게서 더욱 엄격하게 나타났다. 그는 복잡한 다성부 찬양이 가사의 전달을 방해하고 인간의 기교를 뽐내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해 오직 단음으로 부르는 시편가 만을 허용했다. 이는 예배의 주권이 인간의 예술적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선포하는 상징적 조치였다.

20세기 독일 고백교회의 지도자 본회퍼 역시 『그리스도인의 공동생활』에서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며 회중 찬송은 반드시 단음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음으로 부를 때에만 참으로 온 마음을 다해 노래하는지, 그리고 공동체가 형제로서 하나 되어 노래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고 믿었다. 본회퍼에게 단음 찬송은 자아를 내세우려는 욕망을 억제하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는 영적 훈련이었다. 

이러한 교회사적 경고를 거울삼아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를 들여다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대 한국교회의 찬양은 본질적인 영적 집중보다 화려한 무대 연출과 자극적인 사운드에 함몰되어 가고 있다. 성도들은 고요한 가운데 세밀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증폭된 비트가 주는 감정적 고조를 영적 은혜로 착각하고 있다.

심지어 예배의 거룩함을 지켜야 할 성가대조차 본질을 놓치고 있다. 많은 성가대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고백보다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 화려한 화음과 압도적인 성량, 그리고 전율을 유도하는 요란한 피날레를 선호한다. 지휘자의 현란한 손짓과 대원들의 음악적 기교가 중심이 된 성가대석은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의 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예술성을 뽐내는 또 하나의 공연장으로 전락했다. 웅장한 화음 뒤에 숨은 자아는 비대해지는 반면, 정작 그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은 소외되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찬양은 변해야 한다. 찬양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영적 훈련이자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섬김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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