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 기억력도 장사 없다. 옛날엔 사람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외웠다. 그런데 이제는 이름은 고사하고 얼굴마저 기억이 안 된다. 엊그제 본 사람도 어디서 봤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 난처하거나 당황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 머릿속 ‘성능 좋은 지우개’가 잘 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나이에 잊어버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오히려 다 기억하고 사는 게 고통일 수 있다. 살다 보면 가슴에 박힌 못도 있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억울한 사연과 상처들도 있다. 지우개가 그 얼룩들을 부지런히 지워줘야 한다. 그래야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된다. 망각은 고통스러운 과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신의 한 수이자 배려이다.
나 역시 지우개가 너무 성능이 좋아서 생긴 웃픈 일들이 많다. 지인을 만났는데 이름이 도저히 안 떠올라 “‘이생선’ 씨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상대가 황당해하길래, “아차, ‘이 선생님?”이라고 다시 불렀다. 알고 보니 그의 이름은 ‘이세우’였다. 세우가 생선으로 각인된 것이다.
또 한 사람이 있다. 한 중년이 마이크를 잡더니 나를 서너 번 만났는데도 내가 자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그의 이름은 ‘김천원’ 씨다.
그래 내 차례가 돼서 말을 했다. “이름이 천원 씨인데 나는 요새 인플레가 돼서 천 원짜리는 도통 쓰지를 않습니다. 이름이 만 원이나 억 원 아니면 조 원이라면 더 좋고, 그런 건 자주 쓰므로 잘 기억하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천 원이라 그랬습니다”는 말 한마디에 좌중이 빵 터지고 뒤집어졌다. 이름 좀 틀리면 어떻고, 돈 단위 좀 키우면 어떤가. 그렇게 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 사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내가 간곡히 부탁한 말이나 요청한 내용을 건성으로 듣고 잊어버릴 때, 아내는 깊은 서운함을 느낀다. “당신은 나한테 통 관심이 없나 봐요!”라는 원망이 돌아온다.
남편은 지우개 탓을 하지만, 아내에겐 그것이 무관심의 증거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부부는 서로를 연민의 정으로 바라봐야 한다. 젊은 시절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 무심코 던졌던 말들을 지우개가 깨끗이 세탁해 주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비록 건망증이 왔더라도, 평생 곁을 지켜준 서로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제 이름이나 말 한 마디를 기억하려 애쓰기보다, 아내의 손을 더 꽉 잡는다.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표정으로 이름이라는 껍데기보다 마주 잡은 손의 온기가 훨씬 더 진한 소통이기 때문이다.
“여보, 내 지우개가 당신 말은 잠시 지웠어도, 내 손바닥은 당신의 따스한 온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기력이나 기억의 결핍을 연민과 사랑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인생 후반전의 품격이다. 인지장애가 오더라도 이제는 서로의 존재를 가슴으로 느끼며 최선을 다해 아껴주라는 신호다. 가장 소중히 그리고 배려할 유일한 존재는 내 짝이다.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