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쉼터] 따뜻한 나라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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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국에서 살 때 캐나다는 이웃나라이고 또 몇 번 여행한 일도 있어 아주 잘 아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캐나다에 대해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사실 캐나다의 면적은 러시아 다음으로 크지만 인구는 우리보다 적은 4천만이 채 안되고 그러나 붉은 색과 백색 바탕에 붉은 단풍을 그려 놓은 국기에서 보듯 단풍을 사랑하는 서정적인 국민성을 지닌 축복과 환경을 지닌 나라이다. 4계절이 뚜렷하지만 특히 가을의 날씨와 단풍은 정말 캐나다만이 누리는 축복이다. 우리나라와는 1963년 1월 4일에야 정식으로 수교를 맺었지만 기실은 구한말부터 교역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캐나다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선천적으로 선한 국민성을 실질적으로 많이 느끼게 되었다.
일찍이 우리나라에 파견된 캐나다의 선구적인 선교사 중에 게일 목사를 빼놓을 수는 없다. 약관 25세인 1988년 12월 16일에 토론토대학 YMCA의 파송 선교사로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조선에 파견되어 부산을 거쳐 제물포로 입국한 게일은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축복의 시작이었다. 천부적인 언어 독해력을 지닌 그는 3년만에 우리말과 글을 구사해 전도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나 신학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미국으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장로교의 목사가 된 후에 다시 정식으로 선교사의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리고 1900년 5월에 연동교회 초대목사가 되어 1927년에 사임하고 영국으로 귀국해 여생을 마칠 때까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사실 목사의 직분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문학에 기여한 바가 컸는데, 천로역정을 처음으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역으로 춘향전 등 우리의 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또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영어사전을 만들기도 하면서 후에 오는 선교사들이 한글과 우리말을 쉽게 배울 수 있게 필요한 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데 놀라운 사실은 당시 경비를 감당하며 게일 선교사를 파견했던 캐나다의 교회는 아직도 소수의 교인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인데 그 교회의 교인 수가 100명을 넘지 않는 작은 교회라는 사실이며, 여기에서 그들의 선하고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현실이다.
캐나다는 6·25동란 때 비록 우리와 정식으로 외교 관계가 없었지만 신속하게 파병했는데 그 규모도 미국, 영국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은 26,791명이었으며 500명이 넘는 전사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내는 희생을 치른 사실만 보아도 우리와는 불가분의 관계도 있기에 더더욱 그들의 따뜻한 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번 아프간 사태에서 우리나라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아프간 사람 중심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하고 앞으로 그들의 장래도 보장해주는 자세는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렇게 우리도 옳은 일에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어려웠고 또한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던 이웃나라의 선한 행동을 따른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특별히 가을의 정취가 가장 잘 느껴지는 캐나다의 가을이 그리워지며, 그 아름다웠던 가을 단풍에 휩싸이고 싶다. 다만 가을이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는 서정적인 낭만을 느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랜 기간 우리와 정분을 나누었던 캐나다인의 따뜻한 정을 그대로 우리 것으로 되새겨 원래대로의 따뜻한 민족성을 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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