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남을 공경할 때 받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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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학교에 가면서 길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쁜 꽃을 발견하고는 그 이름을 알려고 이 꽃을 꺾어 학교로 갖고 가서 선생님께 이름을 물어보았다. 마침 그 꽃을 알지 못하는 선생은 “아이고 나도 모르겠네” 하며 꽃을 돌려주었다. 평소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던 이 어린이는 선생님의 대답에 조금 놀랐지만, 꽃을 잘 보관해 집으로 갖고 가서 “아빠, 선생님이 이 꽃 이름을 모른대요”하며 아버지께 물어보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대학교에서 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에 당연히 알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의 얼굴을 힐긋 본 아버지는 “아이고 선생님도 모르는데 아빠도 모르겠네. 내일 학교에 가서 알아보고 알려줄게” 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간 딸은 선생님이 불러 꽃의 이름은 물론 자세한 설명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와서 아버지에게 “오늘 학교에서 꽃에 대해 선생님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면서 만족해했다. 사실은 소녀의 아버지가 저녁에 딸의 선생께 전화해서 그 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고,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안 가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존경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는 딸이 평소 선생님에 대해 갖고 있던  경외심을 깨고 싶지 않아서 취했던 행동이었다. 이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 대한 가장 원칙적인 핵심을 잘 설명한 예화면서, 또한 남을 공경할 때에 이에 부수되어 얻는 축복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지금도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는  빌딩에 들어갈 때에 남성은 옆에 여성이 있으면, 문을 열고 “You First(당신이 먼저)” 혹은 “After You(당신 다음에)” 같은 인사말을 건네고, 여성은 “Thank You” 같은 답례를 함으로 서로가 훈훈한 정을 느끼는 예의를 지키는데, 이는 사회가 부드럽게 돌아가는 하나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어떤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던 초로의 여성이 커피를 파는 알바여성에게 ‘아메리카노 두잔과 라떼 두잔이 얼마니?’ 했더니 ‘만팔천원’이라는 답을 듣고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큰 소리로 싸우는 광경이 목도되었다는 신문 가십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나이 먹은 것이 훈장이 될 수는 없지만, 젊은이의 경박함도 묵과할 수 없는 태도인 것은 사실이다. 반면에 복잡한 식당에서 “야, 여기 김치 좀 더 줘” 하며, 교양 없는 자세로 이야기 하는 사람은 아무리 정장을 하고 있어도 신사로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직장에서 자신의 본분을 하려는 젊은이에게 상냥하고, 정겹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교양이 있기에 이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음은 우리 모두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다. 우리가 매일 부딪치며 살아가는 사회생활에서 가장 합리적인 인간관계를 가르치신 예수의 말씀은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때로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 경우도 있고, 남에게 베푸는 작은 호의의 행동이 커다란 보상으로 돌아오는 수가 있다. 설사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이로 인해 내 마음의 평안과 만족함이 있으면 그것으로도 큰 보상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마음의 평안이 오며 결국은 이것이 내가 받는 보상이 된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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