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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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 순례단의 역사(28)

상주에서 안동까지(3)

필자가 용궁면에 제일 처음 들어간 때는 2015년 11월 30일(월)-12월 5일(토) 한주간 동안  부산-경상남도-경상북-대구-경상북도-울산-부산 구간의 배위량순례길을 대중교통으로 한 바퀴 돌며 순례할 때였다. 그날 대구에서 새벽밥을 먹고 ‘경북관광순환테마열차’를 타고 왜관-구미-김천-문경-상주를 거쳐 용궁역에 도착했다.  

용궁이란 신비스러운 이름을 가진 내륙지역이 어떤 고장일지 많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용궁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토끼였다. “아 맞다. 여기가 용궁이지! 그런데 왜 용궁역에 토끼가 살까?”하고 주위를 둘러 보니 토끼 집이 보이고 토끼 집의 문패는 ‘간(肝) 없는 토끼’였다. ‘토끼와 거북’이란 동화를 테마로 용궁면은 이 지역의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듯 했다. 

옛날에는 용궁이 번창했고 용궁군(龍宮郡)의 행정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예천군에 소속된 면 단위의 소재지이다. 그렇지만, 용궁 오일장은 예천군민 뿐만 아니라, 이웃에 위치한 문경군의 사람들까지 함께 하는 지역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다. 오일장은 이효석의 ‘메일꽃 필 무렵’에 봉평장에서 허탕을 친 허생원은 조선달, 동이와 함께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향하는 칠십리 밤길을 가는 동안 일어난 일을 스토리로 해 이효석의 수려한 필치로 엮어낸 이야기를 볼 수 있다. 한 시대 이전 시대의 삶의 애환을 다 함께 겪었던 지역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감당한 용궁 장터에는 지금도 옛날을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가게의 간판이 아직 옛 정취를 느끼게 하고 용궁의 고장 음식으로 개발된 용궁 순대는 용궁에 들르는 관광객이 꼭 먹고 가는 자랑꺼리가 되었다. 

장돌뱅이로 20년을 넘게 살아온 허생원은 친우인 조선달과 함께 매번 봉평장을 들른다. 봉평장에서 허탕을 친 허생원은 조선달, 동이와 함께 대화장으로 향하는 칠십리 밤길을 가게 되는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보기 쉽게, 현대적 해석에 맞춰 재구성한 작품이다. 얄궂은 운명의 허생원과 동이의 이야기가 옛날 옛적 봉평과 대화에서만 있었을까? 용궁 장날에도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용궁에서 생겨난 많고 머나먼 옛이야기들이 모여져 이 지역 이름이 용궁이 되지 않았을까? 

용궁역에서 내려 용궁을 잠깐 보고 11월 2일에 삼강주막, 회룡포, 풍산, 안동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둘러 볼 생각이었기에 용궁에 많이 머무를 수가 없었다. 용궁장터 가까운 곳을 둘러보다가 눈에 보여 찾아간 교회가 ‘용궁풍성한교회’였다. ‘용궁교회’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 이름 앞에 ‘풍성한’이란 이름이 덧붙여져 있어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배위량이 1893년 5월 용궁에서 어느 곳에 머물렀을까? 그는 분명히 관리나, 상인이 아니라, 일반 여행자였기에 당시 여행자 숙소인 주막에서 먹고 잠도 잤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용궁의 주막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무튼 배위량이 용궁에서 잠 자고 쉬고 하면서 이 장터 어느 어귀에서 전도 책자를 팔고 복음을 전한 그 씨앗이 땅에 심겨지고 열매맺어져 이 용궁풍성한교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용궁장터에서 삼강 주막과 회룡포는 멀지 않는 곳에 있다. 먼저 삼강주막을 찾았다. 삼강주막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에서 발원해 봉화-안동-예천을 거쳐 흘러온 낙동강, 봉화 오전리에서 발원해 영주와 예천을 거쳐 흘러온 내성천 그리고 문경에서 발원해 흘러온 금천 3강이 만나는 지역에 있는 주막으로 옛날 나그네들의 애환과 옛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배위량이 상주에서 용궁으로 올 때에 사벌면(상주 사벌국면)과 예천 풍양을 거쳐 삼강 주막에서 배를 타고 문경 영순면을 거쳐 금천을 건너 용궁면으로 왔을 것이다. 

필자가 삼강마을에 처음 들렀을 때는 아직 삼강주막이 관광지로 개발이 크게 되지 않아 버스 정류장이 보통 시골 버스 정류장처럼 아담하게 만들어졌다. 삼강마을을 노래하는 정재삼의 시비가 눈에 들어 왔다. 삼강 주막은 전국 어느 곳보다 많은 삶의 애환과 풍류와 예술과 문학이 있었던 곳이라 여겨진다.  

옛 시절의 나루터가 있는 지역은 교통의 요지였다. 삼강마을은 낙동강과 내성천과 금천이 만나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였으니,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다녔던 그 당시에는 많이 번창한 지역이었을 것이다.  

삼강마을에서 회룡포로 가는 길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그러나 그날 필자는 회룡포(回龍浦)를 보고 난 뒤에 풍산을 거쳐 안동까지 가야 했기에 삼강주막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룡포로 갔다. 회룡포에 가서 회룡포마을 맞은편 산 위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한 눈에 회룡포마을을 조망할 수 있었지만, 필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회룡포에서 제1 뽕뽕 다리에 올라 회룡포마을로 들어가서 마을 전체를 느긋하게 걸어보고 낙을 누리면 좋았겠지만, 그런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회룡포에 와 보았다는 감격만 느끼고 눈에 회룡포를 담고 바삐 풍산을 향해 가야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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