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 일본의 개(犬)가 되다. 그는 왜 그랬을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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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춘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조선총독부 고위행사에 동원되고 있었다. 1940년 2월 15일자 매일신보에 ‘국민문학의 의의’란 칼럼을 게재하고 황민화운동을 지지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 춘원은 매일신보의 ‘창씨와 나’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란’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한다는 주장도 서슴치 않는다.

이후, 춘원의 활동은 그야말로 친일 변절자로 타의 추종을 불허라는 매국행위를 앞장서서 열심히 했다. 1941년 9월에는 매일신보에 ‘반민중의 애국운동’이란 칼럼으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계속 반민족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조선임전보국단’이 주최한 징병제도 연설회에서는 ‘획기적 대선물’이란 제목으로 연설했다. 그는 또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들의 입대를 권유하는 ‘선배격려대’에 참여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결전태세응’ 재선 문학자 총궐기대회 의장을 맡아, 적국항복문인 강연회에서 ‘전쟁과 문학’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조선인 문학단체의 장이란 장은 다 맡아, 펜으로 강연으로 우리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내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의 힘겨운 활동을 최선을 다해 마치고 귀가해,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담구고, 흐르는 땀과 함께 춘원의 눈에서는 언제나 알 수 없는 회한의 눈물이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혼자만의 외롭고 고통스런 갈등의 눈물이었다. 이 눈물은 그야말로 피눈물일 수 있지만 그 속사정은 누가 알 것인가. 그래서 그의 눈은 항상 붉은 핏발로 충혈되기 일쑤였다.

먼 훗날 자신은 언젠가는 혹독한 심판을 받을 테지만, 지금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일본이 더 이상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을 펴지 못하도록 회유해 그것을 막아야만 했다. 조선의 엘리트들을 아예 다 없애 버리겠다는 저놈들의 말살 정책, 살생부만은 꼭 막아야 한다.

이제 이 땅에서 조선어 한글도 다 사라질 판이다. 조선의 역사와 문학도, 영혼도 다 없어질 판이다. 이제 남는 것은 열등감에 젖은 비굴한 노예의 빈 껍데기 뿐이다. 인간의 저항도 어느 정도 희망이 있어 보일 때, 저항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기는 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슨 힘이 남아 있는가?

그리고 세계의 정세를 한번 살펴보자! 조선이 독립할 수 있다고 보는 정세가 어디 한 곳이라도 보이는가? 이제 우리에게는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명분과 소망은 다 사라졌을 뿐이다. 춘원은 훗날, 운악산 봉선사에 피신해서 6촌 운허 스님과의 대화에서 그의 속만을 이미 다 털어 놓았던 말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춘원은 운허에게 이렇게 독백처럼 말한바 있다. “이 땅에 해방은 어느 날 도둑같이 찾아 왔다고…. 어느 누가 이것을 예상했을꼬?” 춘원은 먼 하늘을 쳐다보며 또 이렇게 읊조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실패한 판단은, 조선이 별반 준비도 없었는데, 꿈같은 해방이 그렇게 쉽게, 빨리 왔다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던 그 판단이 가장 실패한 바보스런 판단이라는 것이다.”

춘원은 자신을 비관하며 ‘그때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느껴졌다’는 식의 솔직한 자신의 심경을 털어 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날 운허는 눈을 감고 말없이 염주알만을 돌리고 있지 않았다. 무언가 작심한 듯 춘원을 바라보는 눈빛이 날카로왔다.

“춘원! 내 오늘은 형에게 한마디 하겠네. 너무 서운하게 듣지는 말게나. 내가 춘원에게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해 주는 말로 여겨 주게.” 운허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뜸 그만 들이고 어서 말해 보우!”

춘원은 근래 보기 힘든, 심각한 운허의 표정을 읽으며 실토하기를 재촉했다. 운허는 앉은 자세를 바로 세우며 또박 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춘원은 일종의 과대망상증 환자였어! 모든 것이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자아의식이 춘원을 너무나 억세게 꽁꽁 얽매고 있었던 거야.”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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