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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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 순례단의 역사(36)

상주에서 안동까지(11)

그런데, 한국의 배위량 순례길은 그런 기반 조성이 되어 있지 않아 순례를 나온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각자나 어떤 특정 단체의 특성에 맞춰 순례를 하지 못하고 모든 순례자의 일정에 맞춰 순례를 해야 하는 것이 참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기반 조성을 하기 전까지 순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함께 움직여야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고 위험 부담이 적다. 작은 동호인 모임인 배위량순례단 연합이 좀더 규모가 커지고,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좀더 많아지고, 순례단의 역할이 좀더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한국교회가 순례단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회가 오면, 그 때에는 순례행사를 각자 자기 형편대로 행할 수 있는 그 기반 조성이 언젠가는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하듯이 처음 순례 출발지점에서 순례를 출발해 자유롭게 각자의 길을 걸어서 저녁에 목표지점에 모여 단체 활동과 개별 순례를 병행하는 그런 순례를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순서와 절차가 있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처음에는 한 두 사람, 혹은 소수의 무리가 신앙적인 열심으로 순례를 하다가 점점 소문이 났고 그것이 순례길로 알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순례길이 막혀 유럽인들의 신앙 순례 여정이 산티아고로 향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럽인들에게 중요한 순례길이 되었고 그 길이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순례길이 되었다.

배위량 순례길로 순례를 나왔던 젊은 순례단원들은 순례 길에 이정표를 세우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사유지에 이정표를 세우자면 그 사유지 토지주의 허락이 필요하고 공유지에 이정표를 세우고자 하면 관청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허락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될 일이 많아 지난한 과정에 많은 수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일은 허락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정표를 세울 예산이 있어야 된다. 이정표를 세운다면 어떤 종류의 이정표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젊은 순례단원들은 예산을 세워서 돌로 된 이정표를 세우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돌로 만든 이정표를 세우고자 계획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세울 것인가?

배위량순례단 연합 임원회에서는 배위량이 제2차 순회정도여행을 행하면서 숙박을 한 장소를 중시해 그곳을 먼저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벌써 130년이 지나, 정확하게 찾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숙박한 곳을 배위량 순례길의 거점지역으로 삼고, 그 거점지역에 이정표를 세우고자 한다. 그 일을 위해 그 지역기독교연합회, 거점지역 중심교회, 그 지역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이 일을 행하고자 한다. 이런 일을 이루기 위한 기반 조사로서 그 지역의 기독교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연구해 조명하고 기독교문화가 한국역사에 기여한 바를 연구하고 밝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지난 2023년 3월 16일 청도기독교총연합회 임원들과 배위량순례단 임원들과 만나 배위량 선교사의 제2차순회전도여행 130주년 기념 순례행사와 길 위의 학술대회 준비를 위한 간담회를 했다. 이때 어떤 임원들께서 필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 중에서 다음 두 가지 질문(1. 순례길의 역사성에 대하여, 2. 거점지역의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은 순례를 행하는 동안 늘 받는 질문이고, 배위량 순례단의 순례 원칙이기에 함께 나누고자 한다. 

순례길의 역사성에 대하여

순례길의 역사성에 대하여는 필자는 벌써 여러 번 한국장로신문 지면을 통해 언급했다. 청도기독교연합회 한 임원께서는 배위량이 실제로 전도여행을 했던 길을 필자에게 묻고난 뒤에 “그런데 배위량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을 찾아서 그 길을 따라 걸어야 순례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그래서 배위량 순례길의 노정 문제를 한번 다시 딛고 가야 될 것 같다. 분명히 배위량은 그 당시 사람들이 걸었던 길로 제2차 전도여행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은 연구, 고증과 복원 등을 거쳐 확증되어야 해 지난하게 오래 걸리는 문제이고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국가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완전하게 연구하고 그것을 원형대로 찾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것을 찾는다 해도 원형대로 복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어떤 길이 있으면 그 옛길을 따라 길이 구불구불하거나 오르락 내리락 한 길을 평탄케 하고 바르게 하고 그 길을 넓히고 하는 방법으로 길이 변했다. 이렇게 길이 변형된 경우에 그 옛 길을 남겨 두었다 해도 벌써 130년 전에 있었던 길을 그 원형대로 찾고 복원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비록 옛 지도에 옛 길 표시가 나오지만, 그 옛 길을 정확하게 그대로 알 수도 없고 복원하는 것도 어렵다. 어떤 옛 길은 아직도 남아 있겠지만, 어떤 옛길은 논밭이 되기도 했고, 어떤 길 위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선 길도 있고, 가옥이 지어진 길도 있고, 어떤 길은 신작로의 일 부분이 되기도 했고, 어떤 옛 길 위로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놓여지기도 했다. 그래서 국가가 한다고 해도 사유재산이 된 옛 길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국가가 나선다 해도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설사 옛 길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그 길이 부산 동래에서 상주까지 이르는 옛날 영남대로이고, 상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옛 길이고, 안동에서 영천까지 이르는 조선통신사의 길이고, 영천에서 경주 그리고 경주에서 울산 그리고 울산에서 부산 동래까지 이르는 노정의 옛 길이라는 고증을 받아야 한다. 어떤 길이 옛 길이라는 것을 고증하고 확인하기까지는 학자들과 옛 길을 찾고자 하는 많은 연구자들 그리고 그 일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관청이나, 사회단체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요행히 옛 길의 노정을 찾는다고 해도 그 길을 복원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지금 배위량순례단 연합은 배위량이 1893년 4월 18일부터 5월 20일까지 1달 동안 영남지역 전도를 위해 나와 순회전도를 하며 걸었던 길을 정확하게 찾아서 그 길을 걷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그러면 순례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묶이게 되어 순례의 바른 의미가 연구에 묶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배위량순례단 연합은 배위량 길의 순례를 행해 배위량의 선교의 의미와 역사를 찾고 그가 행한 전도여행이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을 돌아보고 미래 한국교회를 위한 거점 지역을 이어주는 길을 찾아서 걷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배위량이 차지하는 한국교회에서의 위치에 대한 이유에 기인한다. 

이러한 이유와 함께 자세한 노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재정의 투입 아래 가능한 일이기에 그 일에 매달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우를 범치 않기 위해 한계를 정해 배위량이 순회전도여행한 노정을 찾고 연구하지만, 대략적인 연구에 그친다. 그 자세한 노정을 찾고 그것을 고증하고 그 노정을 확정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그 지역교회 사가들이나, 그 지역 교회 공동체가 항상 다니고 접하는 정확한 길을 찾고 연구하고 고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나아가 그 지역 교회 공동체가 그 지자체와도 연관해 이 일을 행함이 올바를 것이다. 그래야 한번이라도 더 가보고 그 길에 대한 역사나 기록을 지역 도서관이나, 관청에서 열람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고, 그것에 대해 기억을 하는 노인들과의 만남도 더욱 원활할 것이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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