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나의 친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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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대기자라고 부른다. 그는 일생을 은행원으로 살았다. 타고난 부지런한 성품에 고지식한 성격은 천상 은행가다웠고, 열정적이고 확실한 성품은 그의 삶을 풍성하게 했으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는 그를 무난한 은행가 생활을 하게 했다. 그러면서 그는 외환은행에서 근무했기에 두 번의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근무하면서 인생에서 필요한 견문도 넓혔다. 그는 은행가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을 비롯해 고객들에게 환심을 사는 태도로 일관하다가 은행에서 정년 퇴임을 했다.

천주교 신자로 믿음이 신실한 부인과 일생을 살아오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다니지 않던 그는, 이제는 함께 성당에 나가자는 부인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우선 산티아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고 결정하자면서,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떠났다. 평소에 걷기를 즐겨하던 그였지만 37일간의 강행군은 그를 지치게 했으나, 마지막 종착지인 야고보 성당에서 느끼는 희열은 그가 경험했던 고통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서울에 돌아온 그는 부인과의 약속대로 성당에 다니면서, 곧 야고보라는 영세명을 받아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귀의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자세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새 생활이 시작된지 얼마 후에 몸에 이상을 느껴 건강진단을 받은 결과 그는 폐암 3기 말로 판정이 났으며, 수술도 어려운 상태로 항암치료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 항암 치료를 받은 후에 몸보신을 위해서 몇 명의 친구들이 심방을 가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모두가 수저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에, 친구가 입을 열었다. “식사를 하는데 백 장로가 기도해야지” 나는 두말없이 친구의 완쾌를 비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함께 맛있는 식사를 나누었다. 당시에 그 자리에는 비신자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기도하는 일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정말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렸고, 의사의 치료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따랐으며, 완쾌한다는 확신과 이를 이루기 위해 긍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친구들과 교류했다. 

핸드폰이 일상화되면서 그의 활동 범위도 넓어져 갔으니, 이제는 이를 통해 그리고 열심히 친구들과 소통하는 범위를 넓혀갔다. 다행히 그동안 쌓았던 우정이 그 효력을 발휘해 그는 우리 동창들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친구들의 가려운 것을 해결해주는 덕분에 그는 동문회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모든 일은 그의 손과 머리에서 움직이는 듯했다. 

어느덧 그의 병은 기적처럼 완치가 되었고,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여생을 보낼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그는 선천적으로 지칠줄 모르고 일에 열심을 내는 성품이기에, 이제는 그의 명석한 두뇌도 활용하고 핸드폰을 통해 다른 동문들의 동정이나, 우리의 노년에 필요한 정보, 그리고 젊은 시절에 즐겨듣던 정겨운 음악들을 정돈해 제공하는 등 우리의 정서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면에 기여하는 바가 지대했다. 그러기에 그의 존재감은 매일 그 가치를 더해가면서 우리가 즐겨 부르는 ‘대기자’의 면모를 거스르지 않고 있다. 당연하게 이제 그를 부르는 그의 이 호칭은 완전하게 자리매김을 했고, 이렇게 불리는 그 자신도 몹시 흐뭇해하고 있어 보기에 좋다. 그러면서 그는 때로는 진짜 ‘대기자’의 자격에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보기에 좋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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