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인 줄 안다

Google+ LinkedIn Katalk +

로마서 2:11

필라델피아의 한 작은 마을에 성대한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숙박업소는 이미 여러 달 전에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미처 예약하지 못한 어느 노부부가 새벽녘에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변두리에 있는 한 호텔에 들어왔다. “초저녁부터 호텔을 찾아 헤매었지만 빈방이 하나도 없습니다. 혹시 여기 우리가 쉬어갈 만한 빈방이 없을까요?”

이 호텔의 직원은 노부부를 보는 순간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우선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노부부를 앉게 한 다음 따끈한 차를 대접하며 말했다. “먼저 몸부터 녹이세요. 요즘 감기는 워낙 극성이어서 한번 걸리면 힘들어집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호텔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빈 객실은 없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노부부가 실망의 빛을 역력하게 보이자 직원이 말을 이었다. “제가 사용하는 방은 매우 누추합니다만 괜찮으시다면 거기에서 묵고 가세요. 저야 젊으니까 하룻밤쯤 괜찮습니다. 비용 걱정은 하지 마세요.” 노부부는 감동해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직원의 안내로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동안 연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아침, 노부부는 평생 처음으로 편히 잤다며 만족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명함을 건네주면서 “당신을 우리 호텔 총지배인으로 모시고 싶소”라고 말했다. 그는 1976년에 1,900개의 객실을 갖춘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경영자 윌리엄 윌도프 아스토였다. 부지중에 따뜻한 친절을 베푼 이 직원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보고 친절을 베푼 결과 총지배인이 되었고 성공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말에 “사람 팔자 두고 보아야 한다.” “물은 건너 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보아야 안다”라고 했다. 내 경우도, 내가 처음 총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앞을 보지 못한다고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시 총회에는 한국교회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떤 분은 내게 원색적인 말로 신성한 총회에 왜 이런 사람이 아침부터 오느냐고 세속적인 표현을 했다. 그 가운데 내가 잊을 수 없는 분은 김계용 목사님과 김윤식 목사님이시다. 김윤식 목사님은 내게 ‘Future Doctor’라고 하며 친절을 베푸셨다. 나는 그분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내 사정을 말했을 때 “꿩 잡는 게 매”라고 하며 구석에라도 책상을 놓고 총회에서 자리를 잡으라고 하셔서 그 말씀대로 실천했다. 그분의 사랑과 인자함으로 인해 오늘의 김선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실로암을 통해서 암흑과 어둠과 절망을 밝은 세상으로, 희망의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한 작은 호텔에 새로 채용된 지배인이 있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취업한 지배인은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온 지배인은 그날의 업무를 파악한 후 곧 도착하는 직원들에게 청소부터 시켰다. 청소를 깨끗하게 마친 뒤 드디어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지배인은 먼저 호텔 내의 로비에 있는 카페를 둘러보았는데 굉장히 낡은 옷을 입은 한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일행도 없이 혼자 카페 한가운데 앉아 신문을 보며 가장 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지배인은 다른 손님들이 이 초라한 노인을 발견하면 호텔의 이미지에 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송하지만 커피를 다 마시고 곧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저희 호텔에서 나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  지배인’이라는 쪽지를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쪽지를 받은 노인은 커피를 다 마시고 곧 카페를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는 지배인 앞으로 한 쪽지가 전달되었다. ‘내일부터 그만 출근하시오. –  사장.’ 지배인이 나가 달라고 부탁한 초라한 노인은 이 호텔의 사장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당장 보이는 것으로 인해 나 자신의 가능성과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11장 3절에서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11절에서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라고 말했고,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2장 1~11절에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은 겉보기에는 허름하고 볼품이 없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내면의 신실성과 인격과 장래를 보고 사랑과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그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비참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사람의 내면이 지닌 알찬 영성과 신실성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그 눈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아름다운 정신,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