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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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난지도 삼동 소년시 ③

결혼서약  ‘불쌍한 사람 위해 살겠다’

하나님의 소유물 실감…사랑으로 결합

난지도 소년시 세울 계획에 함께 동참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생활 기대

이 날 신랑이 만든 이 면사포는 축하객들의 화젯거리가 되었고, 이날의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나의 마음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결혼 서약에 있어서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서약을 한 가지 더했었다.

시댁 형님 집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그런데 삼십이 되도록 장가를 안 가던 동생이 결혼하게 되므로 무척 기뻐들했다.

형님 댁에는 앞을 못 보시는 아버님이 계셨다. 어린 손자들의 손에 이끌려 대문 앞에 나가 앉으셔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시면서 열심히 전도하시던 소박한 신앙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한 할아버지를 어린 손자들까지도 효성스럽게 잘 모시던 가정 분위기가 무척 아름다웠다.

결혼식 날에 신랑은 신부와 서로 지켜야 할 일을 약속했다.

 대학 노트 한 장에 적혀 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다.

결혼하겠습니다! ― 후회할걸?

결혼않겠습니다! ― 후회할걸?

<내가 약속해야 할 일>

① 책임있는 말과 행동(나 하나가 욕먹을 일이 아니니까).

② 친구의 일을 돌봐 줘야 하겠고(30에 친구를 얻고)

③ 근면과 면학을 일과로 해야 할 것이다.

<서로 지켜야 할 일>

①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자각을 잊지 않고 서로 대할 것.

② 최후의 순간에서 어느 하나는 기어이 일어서야 할 것을 명심해야 할 것.

③ 사랑은 마음에서, 믿음은 겸손에서부터 ―(사랑이 없는 곳에 하나님도 없다)

일희일비(一喜一悲)는 의지의 좀, 인생의 굴곡은 계속된다.

짐! 두 개의 짐을 졌다! 그러나 짐을 짐으로써 길을 더 잘 갈 수도 있다고.

결혼과 더불어 광은은 환도하여 난지도에 소년시를 세울 계획을 짜다가, 그 일을 위하여 5월 23일에 부산에서 서울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5월 26일에는 아내 유선에게 결혼 후 첫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23일 밤 10시에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아침 난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맛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날 사랑하시던 그 사랑과는 또 다른 각도로서의 사랑을 나는 느끼면서, 어머님이 내게 배우자를 정해 주시려는 의도가 역시 커다란 사랑에서부터 출발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세계에다 날 맡기기 위해서 애쓴 어머니의 생각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내가 이 세계에 흠뻑 빠져서 정체 모르게 취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하나님이 이같은 세계를 만들어 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오늘이 벌써 5월 26일입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식장에 들어가던 결혼식이 지난 지 1개월입니다. 꿈같이 지나갔지만 여하간 가지가지 추억의 실마리를 남겼습니다.

첫날 밤 나는 이 세 가지를 약속했지요.

① 책임있는 말과 행동

② 친구의 일을 돌보아 줘야겠고

③ 근면과 면학의 새로운 각오외다.

그래서 오늘도 꾸준히 면학의 길을 걸으려고 애씁니다. 물론 친구를 위해 애쓴 것은 사실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를 애씁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점잖아지고 성공을 조급히 생각지는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 앞에는 허영과 물욕이 몇 번이고 침투하려고 애씁니다. 그전 같으면 문제없이 일축할 수 있으나, 지금은 당신이 있기 때문에 약간 동요를 받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함정에는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참 길을 걷기 위하여 출세의 길을 회피하는 것을 당신은 기뻐하겠기 때문에, 내가 무명의 봉사자로서 하나님의 종 되는 것을 차라리 당치 않은 자리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보다 낫게 여기겠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오늘 하루의 생활을 참되게만 살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소유물로서 하나님이 사용하기 위하여 역사 전부터 결합시켜 준 한 개의 성(城)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의 사명을 몸에 지니고 만사에 부닥칩시다. 사회를 향해서나 가정을 향해서나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서 어느 한 편만은 쓰러지지 않고 일으켜 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의향대로 움직인다면 어떻고, 당신이 내 종이라면 어떻습니까. 모두 깨어진 배 위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는 선객(船客)들인데 무얼 더 다투며 겨루리까.

그저 모든 일 위해서는 혼연일체가 됩시다. 나는 1개월이지만 오늘 하나님께 엎드려 그저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가다가 식을 날도 있다지만 나는 믿어지질 않습니다.

쓸데없는 말만 늘어 놓았습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차라리 고향에 온 것 같습니다. 깨끗이 치워놓은 앞마당, 깨어진 백돌로 둘러싸이기는 했어도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지가지의 기억의 집입니다.

벌써 사무는 보기 시작했는데 불우 여성 수용 문제는 곧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당신이 일할 수 있는 것은 확정적이고, 벌써 영봉(英峯) 군이 속히 올라오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씨라는 간사 집에 총무님과 또 한 사람의 간사와 나 셋이서 기거하는데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영봉이가 올라오면 나는 곧 YMCA에 나와서 기거해야겠습니다.

당신이 올라오게 작정되면 곧 통지할 터이고, 또 증명은 아저씨가 해주기로 했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리고 영봉이 서울 올라오는 수속 어찌 됐는지 알아보시고, 안되면 그냥 올라오다가 차 안에서 이동 경찰에게 사정하면 올 수 있다고 합니다. 이창식 씨도 그저 올라왔고, 도강(渡江)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돈을 주지 못하고 와서 안 됐으니 여비를 좀 보태주면 고맙겠습니다.

제주도에 편지 좀 들여보내시고, 낮에는 좀 몸을 쉬어 주세요.

공부는 여기 올라와야 나와 같이 할 수 있겠고 또 조용합니다. 이곳에 오면 낮에 일하고 밤에 넉넉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YMCA에서 미인(美人) 강사로 매일 오후 5~6시까지 영어 공부하며, 탁구대 두 대 있고, 교실에는 아동들이 60명 가량 출석합니다. 나는 영어 계속해서 하오며, 앞으로 편지는 영어로 하도록 힘쓰겠고, 영어로 회답하도록 합시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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