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목사 열전 (3)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 길선주 목사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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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깨닫고 생명 길 인도하는 신령한 말씀 받아

그리스도 믿는 징표로 상투 잘라… 눈물로 복음 전해

그는 이때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고 속량의 의미를 깨닫고 생명의 길이 열렸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찾았다. 그는 찾아오는 손님을 피하여 100일 기도와 성경 연구에 열중했다. 전에는 아리송하던 성경 구절을 깨닫고 그것이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으로 받았다. 그 후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꿀처럼 달아, 밤을 새우며 읽었다. 

그는 성경을 놓지 않았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룩된 감격스러운 역사적 사실이었다. 전에는 고개를 갸웃했던 성경 구절이 저항도 없이 그대로 가슴에 박혔다. 선지자들의 활동, 그리스도의 십자가, 오순절 성령의 역사, 제자들의 활동, 복음을 중심으로 일어난 교회운동 등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영원한 하나님이 이룩하려는 원대한 경륜이었다. 

길선주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성령이 충만한 새사람이 됐다. 생각과 말과 행실이 변했다. 이 기쁨은 선도에서 신비로운 체험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잠자고 있을 수 없었다. 먼저 가게 일을 돕는 이정식에게 전도했다. “이 사람아, 전에는 선도가 제일인 줄 알고 내가 자네에게도 권면했으나 알고 보니 기독교는 선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네. 그러니 자네도 하나님을 믿고 축복받도록 하세” 이정식은 그의 말을 듣고 진실한 신자가 되고 후에 영수가 됐다.

1897년 8월 15일(29세), 길선주는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에게 세례받았다. 길선주는 그리스도를 믿기로 한 징표로 상투를 잘랐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눈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어리둥절했다. 어제까지 선도의 도인이었던 사람의 입에서 난데없이 양교(洋敎)를 믿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길선주 도인의 배교(背敎)가 민족의 긍지를 손상했다고 비난했으며 그의 삭발을 미풍양속에 역행이라고 비웃었다. 

1897년 그는 선천에 이주한 본가로 돌아왔다. 그의 부친은 본래 예수교를 못마땅하게 여겨 선교사와 교인들을 핍박했다. 그는 아들이 오랫동안 신봉한 선교를 버리고 예수교인으로 삭발한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그가 본 아들은 중도 아니요, 도인도 아니며 선비도 아닌 꼭 미친 사람 같았다. 노기가 가득한 그는 정중히 인사드리는 아들을 외면하고 한숨을 쉬었다. 길선주는 말없이 부친의 방에서 나왔다. 밤이 되자 그는 다시 부친의 방에 들어가 꿇어 엎드렸다. 노후의 아버님께 영생의 도리를 전하여 화평과 기쁨을 안겨 드리는 것이 자식 된 효성이었다. 방안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부친이 입을 열었다. “너 뭣 하러 집에 돌아왔느냐?” 싸늘한 목소리였다. 길선주는 부친에게 자기가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아뢰고 [장원영우상론(張援靈友相論)]이라는 전도 책자를 한 권 놓고 조용히 나왔다. 그의 부친은 그날 밤 그 책을 다 읽고 많이 감동했다. 이튿날 길선주가 아침 문안을 드리러 갔더니 부친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놓고 간 그 책을 읽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역시 네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된다. 나도 이제 구주가 되시는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 이리하여 부친은 전에 아들에게 받은 구영삼정 주문(九靈三精 呪文)을 버리고 성경을 탐독하여 이듬해 세례를 받았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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