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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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이라는 나도 일생을 예수를 믿으며 살아온 신자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 다만 이를 이해하는 한 예화를 들수 있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이 와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동상을 지키는 문지기가, 도대체 사람들은 어떤 기도를 하느냐고 궁금해서 예수님께 자신이 한 번만 동상이 되어보겠다고 애원했다. 그리고 결코 기도하는 신자들에게는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고 하루 동안 동상이 되어 신자들의 기도를 듣게 되었다. 첫 번째 부자가 왔는데 그는 도박을 즐기는 자로 가방에 돈을 많이 넣고 와서 돈을 많이 따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가면서 돈이 든 가방을 놓고 나갔다. 입술이 근질거렸지만  약속 때문에 가만있었다. 다음에는 착하지만 아주 가난한 농부가 와서 지금 아내가 중병에 걸렸는데 병원에 갈 처지가 못된다고 하소연을 하고 나가면서, 그곳에 있는 돈가방을 보고 ‘아마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돈이구나’라며 들고 갔다. 다음에 어떤 젊은이가 들어와서 기도했다. 그는 이제 원양어선을 타려는 젊은이로 이번 항해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바로 이때 그 부자가 헐레벌떡 들어와서 대뜸 젊은이의 멱살을 잡으면서 돈 가방을 내어놓으라고 다그치면서, 경찰서로 가자고 소리를 쳤다. 청년은 당연하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항변하면서 이제 빨리 항구로 가지 않으면 배를 놓친다고 호소하면서 다투고 있었다. 이때 문지기는 너무나 상태가 심각한 것을 눈치채고 참지 못하여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여, 젊은이는 얼른 항구로 가서 배를 타게 되었고, 부자는 농부에게서 돈 가방을 찾았기에 문지기도 흐뭇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의 노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너는 나하고의 약속을 어겼으니 어서 내려와 다시 문지기의 역할을 하거라”고 꾸중을 하는 거였다. 이때 문지기는 억울하다는 듯이 “제가 비록 약속은 어겼으나, 그러기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해결되지 않았습니까?”고 항변했다. 그러자 예수님의 노한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부자는 그 돈을 노름판에서 다 잃었고, 젊은이가 탄 원양어선은 곧 침몰해서 그는 죽었다. 이것이 내가 침묵하는 이유다.”

인간은 하나님의 침묵을 못 견딘다. 그렇다고 인간이 하나님의 흉내를 낼 필요도 없다. 또한 인간이 쓸데없이 판단을 내릴 필요도 없다. 인간의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원래 하나님은 침묵 중에 계시면서 침묵 중에 일을 하신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최후를 잘 알고 있다. 성경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라」

우리는 흔히 기도를 드리면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원하는 바를 간구하기를 원하며,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듯 확실하게 응답해주시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대답인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시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를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가 성육신해서 최후에 받는 그 고통을 감내할 때도 침묵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이루었음을 알고 언제나 침묵하시는 그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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