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독교 대학의 존재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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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종교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흔히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 것으로 오해된다. 사실은 반대다. 엄격한 사회과학적 방법을 동원한 그는 유럽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가난한 지역은 주로 로마 천주교인들이 살고 있고 부유하고 진취적인 지역은 프로테스탄트 교인들, 특히 칼빈주의자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이들 지역에서 빈부의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베버는 칼빈주의의 독특한 교리들에 주목했다.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교리, 성실과 근면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교리, 획득한 부를 낭비하지 않고 경건과 금욕생활을 실천하는 교리 등 칼빈주의 교리에 주목했다. 이런 칼빈주의자들의 생활 습속은 결국 자본의 축적을 가져오고 나아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온 것을 발견했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로마 천주교도들은 농사 지으며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만족하였다. 칼빈교도들은 진취적이어서 대도시에 이주하며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교사, 법률가, 의사 등 전문 직종에 종사했다. 시간은 금이라는 합리적인 생활도 이들에게서 발견된다.

막스 베버의 주장은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프로테스탄트 이외의 지역 즉 아시아 지역에도 부유한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주의 교리가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보다 뛰어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가 지도한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박사 과정 한 학생은 독일 칼빈주의 선교사가 세운 자기 교회 전통은 공부를 잘 못하거나 운동선수가 뛰어난 성적을 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으로 혹독하게 책망한다고 하였다. 과거 한국 교회에서도 성적이 좋지 못하거나 품행이 좋지 못하면 교회 나오는 것을 꺼리는 풍조가 있었다. 교회는 공부 잘하고 예능에 뛰어나며 품행이 단정한 소수가 다니는 곳이었다. 교회에서는 엄격한 치리가 시행되었다. 술 먹고 행패부리는 자는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공부 못하거나 동네에서 소문이 좋지 못해도 교회에서는 환영하지 않았다. 가을 문학의 밤 행사에는 격조 높은 문학 작품이 낭독되고 청아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자리는 교인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의 장을 제공했다. 이것이 필자가 어릴 때 경험한 교회의 모습이었다. 

기독교 대학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여러 학문의 수준 높은 배움의 장을 제공했다. 선교사들이 세운 대학은 미래를 위한 직업 훈련, 순수한 지식 탐구를 위한 연구, 문제해결의 능력 함양을 통한 전문인을 양성했다. 좋은 클래스메이트들과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고, 의사 소통 능력과 함께 협력하는 크리스천 인격을 함양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 대학 출신들은 사회의 각 영역에 진출하고 교회에서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 되었다. 미국의 유수한 대학인 하버드나 프린스턴 대학이 모두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연세대나 이화여자대학은 모두 선교사들이 세운 훌륭한 기독교 대학이다. 그리고 기독교 대학은 전문인 양성은 물론 목회자들에게도 평생 교육의 장을 제공했다. 이런 대학은 우리 나라가 발전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그 나라가 얼마나 좋은 대학을 소유하고 있느냐와 비례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간이 흘러 갈수록 교회도 기독교 대학도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 않는지 염려된다. 교회는 더 이상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며 기독교 대학도 마찬가지 아닌지 걱정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대학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이제는 대학을 거치지 않더라도 스포츠계, 연예계, 기업에 진출하는 인재들이 많다. 심지어 최근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으로 진출하여 부와 명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사회의 변화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대학의 중요성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지 크게 우려된다. 이러한 세태에 필자는 대학생 때 읽은 영어 에세이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그 에세이 제목은 I never went to college 이다. 저자는 미국 저널리즘의 거장이다. 인명사전 Who’s Who에 등재되고 대학에서 교수와 인문대학 학장을 할 정도니 충분히 성공한 삶이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쓴 에세이가 위 제목의 글이다. 그는 또래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시절 일하느라 바빴고 교수의 수준 높은 가르침을 받지 못했으며 고귀한 품성의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기회를 놓쳤다. 졸업생들이 모교를 방문하는 Reunion 행사에도 갈 수 없다. 사회적인 성공이 대학생활의 중요성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고 그는 아쉬워한다. 역으로 그는 요즘 대학이 제대로 교양을 함양하고 소통과 협업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의 전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지 묻는 것 같다. 그가 신앙인인지 아닌 지 필자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은 오늘 날 교회에 대해, 기독교 대학에 대해 우려하는 필자의 심금을 울린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우리가 가는 길의 빛이라고 한다. 진리의 빛이 우리나라 기독교 대학에 비춰 기독교 인재를 키워 이 나라를 다시 부강하게 하는 기능을 감당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구춘서 목사

<전 한일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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