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목사 열전 (3)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 길선주 목사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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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인 신학 공부 위해 신학교 입학

황해도 재령 사경회 때 성령의 역사 일어나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탄생하신 예수는 피조계에 존재하신 분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삼위일체인 그 본래의 위치로 환원하셨다. 그래서 영원한 세계 완성을 위해 인류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재림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사람에게 알리려는 말씀으로, 전도자들이 위탁받은 대로 성령의 감화로 기록됐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인류에게 공개하신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성도에게 위탁된 것이다.” 이는 길선주가 성령에 힘입어 기도와 성경 연구로 영적인 경지에 도달해 터득한 신학 사상이었다. 

그는 교역자로서 대중의 갈채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일제에게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감시를 받았다. 그는 우선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 신학교는 조사를 위해 3년제 예비과를 두었고, 이 예비과를 마치고 나서 본과를 계속하는 5년제로, 졸업자에게는 목사의 자격을 부여했다. 길선주, 방기창, 양전백, 한석진, 이기풍, 송인서 등이 추천되어 이 학교에 입학했다. 갓을 쓰고 도포를 걸친 30~40대의 수염이 덥수룩한 신학생들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관이나, 영생의 도리에 눈뜬 이들의 향학열은 대단했다. 길선주 장로의 신학교 시절은 목자의 수련 기간으로 보람찬 시기였다. 하나님의 이 훈련도장에서 그는 많은 것을 새로 익히고 배웠다. 

한편, 그는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와 성경 읽기에 힘썼다. 한번은 존스턴 박사가 평양을 방문해 길선주 장로가 시무하는 장대현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그는 회중을 향해 성령의 은총을 충만히 받아 교회를 부흥시킬 자신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그러나 회중은 잠잠했다. 아무도 감히 손을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윽고 길선주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존스턴 박사는 앞으로 조선 교회가 크게 부흥하리라고 예언하고 길선주 장로와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그해 가을 길선주 장로의 황해도 재령 사경회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눈물로 자기 죄를 회개했고 은혜를 받았다. 이 성령의 불길은 한반도를 휩쓸었고,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졌다. 

1907년 1월 6일 새벽부터 장대현교회 부흥회가 시작됐다. 낮에는 선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쳤고, 저녁 집회 때는 뜨겁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은혜가 충만했다. 새벽녘에 길선주 장로가 설교하다가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외쳤다. 그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아이고!”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눈물로 통회 자복하다 그 자리에서 거꾸러졌다. 길선주 장로는 설교를 계속했다. 여기저기서 “아이고!”를 외치며 이내 교회는 울음바다가 됐다. 숨겨 왔던 치부가 드러나고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그 사람들을 향해 정죄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보여 주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어떤 이는 아내를 죽였다고 고백했고, 어떤 이는 사기꾼이었음을 자백했으며, 또 어떤 이는 강간의 죄를 뉘우쳤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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