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 저일 생각하니] 우리 독립운동가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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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 보고 싶던 몽골에 지난해(2022년도) 여름에 갔다. 그해 6월 19일 우리 일행 5명은 코로나에 대처하며 몽골행 비행기에 올라 징기스칸 공항에 내렸다. 우리는 애국지사요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1894-1970) 박사 손녀 최은미 외솔회 전 이사장이 21일 울란바토르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받는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행 5명이 몽골에 온 것이다. 

공항에 환영 나온 최기호 울란바토르대 총장과 강보물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우리를 칭기즈칸(1167-1227) 웅장한 공원으로 안내했다. 40미터 높이의 말을 탄 칭기즈칸 동상은 전쟁터를 말 달리는 용맹한 모습 그대로였다. 내부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와 넓은 광야를 바라보는 칭기즈칸 두 눈에는 옛날 몽골대제국 건설의 꿈이 서려 있었다.

다시 안내한 곳은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이다. 대암大岩 이태준(1883-1921) 선생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1911년 2회로 졸업하고 애국가를 지은 도산 안창호(1878-1938)가 조직한 흥사단 전신인 청년학우회 활동을 하며 무실역행 충의용감의 도산정신을 잘 익혔다. 기독교 믿는 민족주의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일제는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기독교 지도자 검거 선풍을 일으키자 이태준 선생은 몽골 울란바토르에 가서 정착했다. 동의의국병원을 1914년에 개업하고 당시 몽골의 80퍼센트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여 낫게 하므로 몽골의 슈바이처로 존경받았다. 몽골 마지막 황제 복드칸 8세 주치의가 되고 의료봉사로 몽골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한편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영향으로 조국 독립운동에 앞장서서 중국과 몽골을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을 도우며 의열단에 가입하여 폭탄제조 기술자를 안내하기도 했다.

1919년도에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에르데닌 오치르’ 몽골 훈장도 받았다. 1921년 울란바토르를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 군대에 의해 38세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1990년 한국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2017년 2월에 이태준 선생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모셨다.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은 이 선생의 업적과 나라사랑정신을 기리며 몽골정부가 제공한 2천 평 부지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한국과 몽골 양국간에 우정과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공원 조성은 몽골한인회와 이태준 선생 모교 연세대학교 연세의료원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공원 안에는 이태준 선생의 유품과 사진 및 활동 상황이 전시된 기념관이 서 있다. 해마다 광복절 행사가 열리는 대암정 이태준 선생의 묘를 찾지 못해 쓴 가묘, 그리고 추모비(2016. 6. 6.세움)가 서 있다. 

조국 독립운동에 앞장선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안창호의 순국독립정신과 이태준 선생의 독립정신 그리고 의료봉사정신이 길이 흐르길 기도하며 우리는 공원에서 나왔다. 2022년 6월 21일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울란바토르대학교에서는 제2회 재단 이사장 취임식, 제26회 학위수여식을 국립문화회관에서 거행했다. 2022년 9월 9일 소천하신 이흥순 장로님 뒤를 이어 아드님 되시는 이승택 장로가 제2대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외솔회 전 이사장 최은미 여사도 최기호 총장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는 이승택 장로, 최은미 여사를 축하하고 이태준 선생의 나라사랑 이흥순 장로의 선교정신을 기리며 주님 은혜 감사하며 다음날 몽골을 떠났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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