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생명의 길을 따라온 걸음 정봉덕 장로 (17) 나의 인생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7) 

Google+ LinkedIn Katalk +

총회, 하나님 뜻 구현 위해‘정의·평화·일치 향한 교회’사명 다져

  정봉덕 장로는 1927년 생으로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군대시절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한 뒤 60여 년간 주의 신실한 종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애썼다.

  총회전도부 간사를 시작으로 총회 사회부 총무, 공주원로원 원장, 한아봉사회 설립,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 등을 설립했다. 남은 생애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며 북한 정착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 편집자 주 –

교회와 사회분과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노인이나 유아 등 약한 자들에 대한 복지대책은 매우 미흡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총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도움이 필요한 자와 나누려는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이다.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모든 기독교인이 자신의 생활 주변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살아가는 복음의 실천운동이다. 즉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이 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들이 가정, 학교,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삶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받는 고통을 인식하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여, 그들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는 ‘복음의 실천 현장’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의 실천 현장의 범위는 개인, 가정, 지역사회, 국가, 국제사회 등 매우 광범위하지만 각 교회가 중심적으로 노력해야 할 사랑의 현장은 우선 교회 주변의 지역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취지이자 목적이었다.

이 운동은 1986년 9월 제71회 총회(총회장 장동진 목사)의 인준을 받은 후 연구, 교육, 평가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전개되었다. 노회와 지교회에서 이 운동을 활발히 추진할 수 있도록 목회지침과 지도지침을 작성해 전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 교육 교재를 발행하여 전국 교회로 하여금 사랑의 현장을 갖도록 안내했다.

또한, 사회봉사의 연대적 의의를 찾아가기 위해 청소년문제 심포지엄(1984년 5월), 통일 및 평화문제 연구 세미나(1984년 6월), 환경⋅공해문제 연구 세미나(1984년 8월)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국노회 사회부장 협의회’, ‘교회의 사회교육 실무자협의회’, ‘유아원 운영자 세미나’ 등을 통해 디아코니아 선교정책을 모색했으며, 이런 성과를 폭넓게 소개하기 위해 ‘교회와 사회’를 발행하여 선교적 동기를 강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예산편성 시 사회부 활동을 활성화하여 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전체 예산의 최소 10% 이상을 사회부 예산으로 책정할 것을 각 노회와 지교회에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또 실제적인 목회 현장의 맥락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사회선교 지침서’를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민주화를 서두르던 격동기에 제72회 총회가 모여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정의, 평화, 일치를 향한 교회’의 사명을 다지게 되었다. 이 사명을 위해 1987년 11월, 총회사회부원과 전국노회 사회부장협의회는 당시 총회장이던 김형태 목사의 주제강연과 교육부 총무이던 문전섭 목사의 목회적 과제에 대한 발제 후, 각 분과별로 모여 현실적 과제를 찾아나갔다. 이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신앙고백으로부터 출발하고, 그 고백과 함께 한국 역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시도였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가 1983년 벤쿠버 총회에서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neation)’을 이 시대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 목표로 정한 것과 맥을 함께한 것이다.

1989년 4월에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교회자료의 홍보 차원에서 교회 출판물 전단을 통해 정보화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6월, 나는 총회 사회부 총무로서의 마지막 사업을 추진했다. 지금 한국의 초고령사회를 예측이나 한 듯이 ‘노인문제와 교회의 대응책’에 대한 논의를 시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300만 노인(당시 만55세 이상)을 위한 교회의 복지선교정책을 수립하는 데 작은 기여를 했다.

사회부 시절 다수의 책자를 편집하고 발행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1984년 ‘민중과 함께하는 교회’를 시작으로 1989년까지 ‘정의와 사랑의 복음, 사회선교 정책자료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사회선교 정책자료 2’, ‘디아코니아의 의미, 사회선교 정책자료 3’ 총 4종의 서적을 발간하였다. 교회와 사회분과에서는 류태선 목사가 애써 주었다.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 사회선교대회

1983년은 한국교회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였다.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보고 다음 2세기를 준비하기에 앞서 한국교회의 선교 비전과 과제를 명확히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총회는 총회 차원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검토하고 교회의 봉사 기능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확인하기 위해, 6월 27일부터 3일 동안 ‘한국교회 사회선교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 아래 경주 유스호스텔에서 사회선교대회를 열었다. 각 노회에서 모인 교역자와 평신도 총 407명은 3일 동안 임택진 목사(1977년 제62회 총회 총회장), 노정현 박사(연세대 교수) 외 8명의 강사들이 준비한 강의를 듣고 사회선교의 개념을 성서적으로 새롭게 정립하여 제2세기 한국교회의 사회선교 지침을 마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총회 사회부 훈련분과 간사였던 박창빈 목사와 교회와 사회분과 간사였던 류태선 목사(당시는 평신도)가 준비 및 진행 실무를 맡아 수고하였고, 당시 청년회 전국연합회(장청) 회원이던 허춘중(총회 파송 태국 선교사), 박준철(중부투데이 인터넷 신문대표), 윤신영(총회 해양의료선교회 총무), 송진섭(전 안산시장), 이식영(총회 재무회계국 국장) 등이 현장 분과토의 진행을 맡아 전체 대회를 이끌었다. 그들이 핵심 역할을 잘 감당해 주었기에 사회선교대회가 잘 진행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청이 하나님의 선교를 도움으로써 1987년 우리 사회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게 하는 원동력을 마련했다.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 사회선교대회의 결의문 중 우리의 각오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이곳에 실어 본다.

1. 사회선교는 성서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된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어야 함을 성서에서 재확인한다.

2. 우리의 현실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인권 침해와 각종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개발과 함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3. 교회의 사회 참여는 오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이를 위해 구체적인 선교활동을 계획하고 실시해야 한다.

4.  총회와 노회는 사회 선교 정책과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서 지역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나아가서 지교회의 목회 행정까지 이를 수렴하게 하고 또 이를 수행하기 위해 교육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5. 민중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고 새로운 민족 역사를 이어갈 민족 통일에 기여하도록 계속 연구, 노력하며 기도할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한국교회는 이 결의문의 다짐들을 기억하며 실천해 왔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