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목사 열전 (3)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 길선주 목사 ⑬ 

Google+ LinkedIn Katalk +

‘믿음은 예수를 열심히 따르고 실천하는 것’

자신에게 오는 어떠한 시험과도 싸워 이겨내

가난은 게으름에서부터 온다. 관료들의 부패는 곧 일하지 않고 백성의 것을 빼앗는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는 탐욕이었다. 이것이 곧 게으름의 결과다. 해타론은 부지런하고 노동을 신성시하는 것이었다. 신앙인은 항상 부지런하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전도하며, 기도를 쉬지 않고, 서로 사랑해야 했다. 믿음은 예수를 열심히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많은 신앙의 위인들처럼 길선주 목사도 자기 손으로 세우고 키운 장대현교회에서 배척당했다. 사람들은 위인이 배척할 그의 결점을 지적해 허를 찌른다. 길선주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의를 행함에서 굳세었고, 진리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죄를 책하는 데 엄했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므로 그릇된 행동이 없었고, 전국 교회에 바친 몸이었으므로 자녀교육의 열기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자녀들의 잘못은 덮어 두고 자신들의 잘못만 꼬치꼬치 캐내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진실하고 공리에 뜻이 없었으므로, 공적은 다른 사람이 취하고 자신은 실패자와 같이 보여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행운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그의 불운을 극복했다. 그는 자신에게 오는 시험과 싸워 이겼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기생으로 이름난 사람을 ‘평양 색향(色香)이라 했다. 이 평양에 예수교가 들어와 세상을 바로잡기 시작하자 평양의 기생들이 예수쟁이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들고 일어났다. 평양 기생들은 “큰일 났다. 빨리 예수쟁이들을 잡아라. 예수쟁이를 잡으려면 길선주 목사부터 잡아라” 하며 난리가 났다. 말 그대로 유명한 평양 기생들과 유명한 길선주 목사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길선주 목사는 평양을 온통 예수 판으로 몰고 가는 불세출의 전도사로 평양의 중심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에 힘을 방출했고, 이로 인해 평양이 빛바랜 색향이 되자 기생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때 한 기생이 “내가 꼭 길선주 목사님을 서방님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하며 나섰다. 이 기생은 장대현교회에 출석하며 새벽기도회도 나갔고, 진실한 교인으로 보여 마침내 길선주 목사의 눈도장을 받았다.

어느 날 저녁 길선주 목사는 그 기생이 준비한 식사 자리에 초대됐다. 의심 없이 초대에 응한 길선주 목사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하는 기생을 따라 방에 들어갔다. 신방같이 아늑하게 꾸민 방에는 잔칫상처럼 잘 차린 밥상이 하나 있었고, 목사가 안 마시는 술병도 보이는 푸짐한 밥상 가까이에는 비단 이부자리가 깔려 있고 그 머리맡에 원앙침이 놓여 있었다.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린 길선주 목사는 갑자기 나뒹굴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사람 살려! 길선주 살려! 나 죽는다.” 길거리까지 울려 퍼져 나간 다급한 구명의 절규에 길 목사를 서방님으로 모시려던 그 기생은 기절하고 말았다.

길 목사는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구출되어 구사일생으로 교회로 돌아왔다. 이후로 평양 기생들은 예수쟁이라면 고개를 흔들었고, 길선주 목사를 정말 존경하는 참한 기생들은 일을 그만두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27년 원산 석우동교회 부흥사경회에서 길선주 목사는 교인들에게 믿음을 굳건히 할 것과 현재의 환난을 신앙으로 이겨낼 것을 권했다. 그런데 설교 중간에 갑자기 전기가 꺼지고 괴한 30여 명이 단상으로 뛰어오르는 소란이 있었다. 석우동교회 예배당은 아수라장이 됐고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없었다. 여신도들이 강단으로 황급히 올라가 길선주 목사를 에워싸고 강단 후문으로 인도해 다행히 무사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