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44년간 소외된 이웃 봉사한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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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재(71) 씨는 1947년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다가 1957년 서울 강북구 피난민촌에 정착하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조차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독학으로 1968년 21세에 서울대 치대에 입학하였다. 그는 치대 본과 4학년 때 의료봉사동아리 ‘푸른얼’을 만들어 의사가 없는 무의촌(無醫村)을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하였다. 그는 시골에서 설날에 의료봉사를 마치고 마을 사람들과 명절음식을 먹으며 지낸 것이 크게 보람을 느꼈다고 하였다. 1999년 치과의사 30명이 ‘열린치과의사회’를 만들어 신 원장이 초대회장을 맡아 봉사를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IMF 외환위기로 노숙인 들의 환자가 급증하여 이가 썩거나 빠진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치료하여 주는데 헌신하였다. 그 후 탈북자들을 치료하여 주었으며 그리고 열린치과의사회가 2003년부터 탈북민의 정착 기관인 통일부 산하 ‘하나원’에서 이를 치료하는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들이 30대인데도 불구하고 치아가 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월남 과정에서 고생을 겪었기 때문이었다면서 그들을 무료로 치료하여 주었다. 

그는 지금도 장학 사업에 거금을 희사하였으며 지금까지 열린치과의사회에 2억 원, 남북하나재단에 1억 원을 희사하였다. 그리고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 15차례에 걸쳐 금강산 온정리에 사는 주민을 진료하였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신 원장은 무료로 진료해준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와서 치아가 좋아져 밥을 잘 먹었더니 몸무게가 불어 감사하다고 할 때 크게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다.     

신 원장은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중앙치과의원을 1974년부터 현재까지 44년간 저소득층을 무료로 치료하고 있으며 특히 탈북민, 노숙인, 중국 동포 등 치료대상이 다양하다고 하였다. 신 원장은 이러한 사실을 정부가 인정하여  제52회 청룡봉사상 인상(仁賞)을 받아 마음이 흐뭇하다고 하였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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