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들을 귀가 있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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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동안 사회학을 가르친 어떤 교수가 정년퇴직하면서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지막 과제를 냈다. 강의를 마치면서 칠판에 이렇게 쓰고 각자의 생각을 적어내라고 했다. “말기 암으로 5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을 표현했다. ‘여행을 가겠다’ ‘소문난 맛집을 순례하겠다’ ‘등 돌린 친구들과 화해를 하겠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 등등.

그런데 한 학생만이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교수가 학생에게 다가가 주의를 시켰다. “무엇이라도 쓰게, 아무것도 안 쓰면 영점처리 된다네.”

학생은 그 후에도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과제 제출 5분 전’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무언가를 단숨에 적었다. 100여 명의 학생 중 그만이 유일하게 과목성적 A+를 받았다. 

학생이 제출한 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일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일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며 사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 수밖에.” “그것이 남은 삶을 향한 내 사명이다.”

이야기를 대하면서 이런 자문을 하게 됐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강의를, 똑같은 교수에게 들었는데 왜 유독 한 학생만 A+를 받았을까?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다. 말씀하신 비유는 말씀을 받는 네 종류의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주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의 밭은 당연히 좋은 마음의 밭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좋은 마음의 밭이 되는 필수조건은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역으로 표현하면 들으려면 좋은 마음이 돼야 한다.

그럼 좋은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그것을 알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다가오는 신앙의 문제와 삶의 고민도 해결되기 시작한다. 그 대답을 10절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 다 못 알아들었다. 무슨 의미인지, 어떤 뜻인지 못 알아들음은 다 똑같았다. 하지만 들을 귀가 있는 은혜를 받을 자는 예수님께 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가지고 이곳저곳으로 답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간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기본으로 돌아간다’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우리 교회에 문제가 발생할 때가 있다. 어떤 작은 문제는 해결되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는 감당할 수 없는 때도 있다. 대형사고로 확산될 때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대형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면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 경우가 참 많다. 우리의 신앙도 기본이 있다. 그 기본은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로 들을 귀가 있는 은혜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께 갈 때 태도를 갖춰야 한다. 10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물으니’라고 돼 있다. ‘우리가 통상 예수님께 나아갈 때는 존칭어를 사용해야 한다. ‘물으니’가 아니라 ’여쭤보니‘라고 했으면 좋겠다. 

’옥에 티’를 드러내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다. ‘주님께 대한 인식이 어떠한가’라는 의미다. 

주님께로 갈 때 우리의 자세는 겸손과 간절함이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고 오직 예수님만 우리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태도와 자세가 어떠해야 하겠는가?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이럴 때 응답하셔서 말씀하시고 듣게 하신다. 그 사람이 들을 귀가 있는 은혜를 받는 사람이다. 

세 번째로 들을 귀가 있는 은혜가 있는 사람은 20절의 말씀에 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말씀을 듣고 받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뭔가? 듣고 거기에서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을 귀가 있는 은혜는 즉종하는 사람이다. 말씀을 받아서 즉시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아주 자그마한 일부터 즉시로 시작하는 사람이 들을 귀가 있는 은혜를 받는 사람이다. ‘내일 해야지,’ ‘내년부터 이렇게 시작하리라’ 하면 이미 틀어지게 된다. 

지금 즉시 순종하라. 오늘 하라! 내일로 미루지 말라! 그러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명경근 목사

<김화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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