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1% 나눔으로 100배 성장한 석성장학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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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2004년 말 국세청 공직자 생활을 마감했다. 11개월 후인 2005년 11월 국세청 후배들과 함께 세무법인을 출범시켰다. 1994년부터 부모님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만든 ‘석성(石成)장학회’를 모체로 한 석성세무법인에선 지금껏 연간 매출액의 1%를 장학재단에 기부해오고 있다. 이익이 아닌 매출액의 1%를 장학금으로 내는 기업은 아마도 보기 드물 것이다.

이렇게 독특하게 태동한 ‘석성(石成)장학회’는 다른 장학재단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선 장학생 선발기준을 남다르게 했다. 대상자를 성적이 우수한 학생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된 학생 위주로 선정하고 있다. 특히 친정집 같은 국세청에 몸담고 있는 현직 국세공직자 자녀 중에서 상당수를 뽑았다. 흔히들 국세공직자라면 무조건 잘 살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국세청에 몸담으면서 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중증장애인 자녀를 거느리고 있는, 이 밖에도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후배들을 많이 봤다. 이들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장학재단 운영에 필요한 일반경상비를 최대한 줄였다. 재단 이사장과 재단 이사, 심지어 실무자까지도 가급적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게 했다.

이렇듯 다른 장학회와 달리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 저자의 자녀들도 감동한 듯했다. 그래서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처음 받은 월급 전액을 석성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여기에다 10여 년 전 딸의 결혼식과 아들 결혼식 때 받은 축하금 1억 5천만  원도 모두 석성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이처럼 아들과 딸에게 석성장학재단은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석성장학재단이 출범한 지 어언 30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은 30여억 원의 예금을 비롯해 부동산까지 합치면 기본재산이 32억 원 정도 되는, 제법 큰 장학회로 발돋움했다. 여기에다 그동안 2천여 명에게 23억여 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1984년 5천만 원의 종잣돈으로 출범한 장학회가 100배나 넘는 큰 장학회로 발돋움한 것은 플로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그동안의 삶의 모토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몇 년 전 일면식도 없는 세무서장 출신의 한 선배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기도 화성과 남양주의 임야와 전답 10필지를 흔쾌히 기부해주었다. 얼마 전 그중 대부분이 생각지도 않게 팔렸다. 그 외에도 주위에 계시는 뜻있는 분께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기부를 해줬다. 여기에다 석성세무법인 본사와 10개 지사에서도 매년 발생하는 매출액의 1%를 석성장학재단에 기부하니 매년 2억 원에 가까운 금액이 장학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해마다 2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줄 때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50년, 100년 뒤 이 땅을 지키고 있을 이들은 누구일까? 답은 뻔하다. 우리들의 다음세대다. 생명은 유한하다. 우리가 그토록 욕심을 부리며 붙든 재산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 놓고 가야 한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뭘까? 건강한 기독교 신앙을 지닌 다음세대를 적극 육성하는 일 아니겠는가.

조용근 장로

 높은뜻푸른교회 

 극동방송 시청자위원장 

 국민일보 감사 

 석성세무법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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