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사모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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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어느 영성 훈련장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라는 하귀선 청년 찬양사역자를 만났다. 오랫동안 마산 결핵요양소에서 치료를 받고 결핵균이 사라져서 막 퇴원한 청년이었다. 그녀가 내게 건네준 찬양 CD 커버엔 그녀의 폐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과 그녀 주치의의 소개글이 있었다. “한쪽 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머지 폐마저도 상엽 부분만 조금 남아있는 이 사람이 걸어 다니는 건 하나님의 은혜요, 이 사람이 찬양할 수 있다는 건 하나님의 기적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겠다고 찾아왔길래 결혼생활엔 숨찬 일이 밤낮 많을 텐데 괜찮겠느냐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결국 그녀는 결혼했고 남편은 목사가 되었으니 쉽지 않은 사모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힘든 사모의 길을 걷다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모들을 많이 만나면서 농어촌 미자립교회 사모들을 위로하는 ‘사모데이’를 매년 3월 5일에 갖자고 주창했다. 

사모데이를 선포한지 13년이 지났다면서 목사님 은퇴하시기 전 한소망교회에서 사모들을 한번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해왔다. 그리하여 2024년 3월 5일, 이 글을 쓰는 오늘 우리 교회에서 1천여 명의 사모들이 모여 하루종일 은혜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개회 예배 기도를 맡은 ‘인천 이문교회 손동순 사모’의 대표 기도를 듣다가 웃음이 터졌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난다. 

“아버지, 저의 친정엄마 말씀이 시집가면 귀머거리 삼년, 소경 삼년, 벙어리 삼년, 석삼년을 잘 지내거라.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그리고 시집가면 서방님한테는 입 안의 혀처럼 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니 그 석삼년이 평생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사모라는 이름이 주어진 그날부터 잘하든 못하든 사람들에게 표적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착한 성도 열 명이 있어도, 그렇지 않은 한 명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가슴앓이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엔 시어머님이 한 분이건만 교회 안에는 어찌 그리 시어머니도 많은지요.”

우리교회가 실시하는 영성훈련 프로그램들 가운데 뜨레스 디아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받고 자기를 가두고 있는 벽들이 무너지고 새롭게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한 사람 두 사람 무너져 가는 사이 제일 마지막에 무너지는 사람이 목사님들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매번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간까지도 눈물샘이 터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사모님들이다. 힘들고 아프다 못해 가시밭이 되고 얼음장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그분들이 주님을 만난 기쁨에 울기 시작할 때면 나도 따라 통곡하곤 한다. 예외가 없진 않겠지만 사모가 되신 분들은 대개 청년 학창 시절 헌신적이고 믿음이 좋은 분들이었다. 꿈도 많고 똑똑하신 분들이다. 세상 파도가 아니라 교회 파도에 시달려 꿈을 잃어버리고 쓴뿌리에 가시밭이 된 분들이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사모데이(3월 5일)!

한국교회 모든 교회들이 이 날을 사모데이로 선포하고 교회를 섬기는 각 교회 사모님들을 한번쯤은 위로하고 격려하면 어떨까?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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