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횡재

Google+ LinkedIn Katalk +

기쁨이 도가 넘으면 한숨으로 변하는가 보다. 순호는 10분 새에 서너 번도 넘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해결 못할 일이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 때문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나오는 한숨이었다.

 순호는 주위 사람들의 거동을 살피면서 안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지갑을 겉으로 만져 보았다. 그것은 억! 하고 놀랄 수밖에 없는 3억짜리 당첨된 복권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이다.

벨을 누르자 평소처럼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 온 데 없었소?” “아니요.”

“당신 만일에 돈이 생긴다면 무엇에다 쓰겠소?”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자는 피식하고 웃었다. “당신 복권 끝자리 수라도 맞은 모양이군요. 5천 원짜리.”

이 말에 순호도 피식하고 웃었다. “그보다는 큰 액수인데…” “5만 원이요?” “3억 원!” “옛?”

영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그러자 곧 흐느껴 우는 영자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다음날 아침, 순호는 출근을 하지 못했다. 돈의 사용처를 밤새 의논했지만 확정을 짓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저의 말대로 결정을 하시라니까요. 3천만 원은 집에 대한 융자금 갚고요. 그리고 큰딸네에게서 빌린 3천만 원을 돌려 주고요. 그리고는 2천만 원씩 애들에게 생활비로 나누어 주자구요. 그 다음엔 당신 말대로 순희네를 시내로 들어오도록 전세금조로 2천만 원을 주자고 하시니까 그렇게 하시자구요.”

벌써 수십 번도 넘게 주고받은 얘기이다.

“아니야, 잠깐!”

순호는 손을 내흔들었다.

“아, 미처 그 생각을 못했었군!” 

“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거렸다.

“돌아가신 이 선생님의 빚보증 말이요.”

“아니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지금 그 얘기를 꺼내시는 거예요? 사장님도 우리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셨지 않아요?”

“물론 은퇴하신 은사 이 선생님이 재정보증 서라는 것 차마 뿌리치지 못해 해드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사정이고 강 사장이야 어디까지나 우리 보고 갚으라는 게 당연하지.”

“그럼 2억 5천만 원을 다 갚는다고요?”

맥이 확 풀렸다. 갑자기 순호가 눈을 감으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어머나! 심부전증이 도진 거예요?” 재빨리 베개를 가져다가 놓으면서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한 2억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 그래요?”

“아니에요. 차라리 당첨이 안됐더라면 좋을 뻔했어요.”

돈만 생기면 만사가 다 풀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괴로움만 산더미처럼 몰고 왔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갚아야 하고 주어야 할 데가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지 졸지에 엄청난 빚에 몰린 사람처럼 숨이 막혔다.

“우리 아무것도 생각지 말아요.”

순호는 속삭이듯 들려주는 영자의 말을 들으면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덮쳐오는 졸리움에는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자도 덩달아 눈을 감았다. 횡재고 무어고 간에 만사 제쳐놓고 지금은 그저 푹 잠을 잤으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이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