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사오정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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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유행처럼 번지던 사오정 시리즈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었다.  

사오정과 손오공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 시험을 치르러 갔다. 손오공이 먼저 면접관 앞에 섰다. ‘25번 손오공입니다.’ 「젊은이, 축구를 좋아하시오?」 ‘예, 좋아합니다.’ 「축구선수 가운데 누구를 가장 좋아하시오?」 ‘옛날에는 박지성이었는데 요즘은 손흥민입니다.’ 「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데 산업혁명이 언제 시작되었나요?」 ‘예, 18세기입니다.’ 「UFO나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되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던 사오정이 손오공을 붙들고 ‘뭐라고 묻더냐? 뭐라고 대답을 했냐?’ 꼬치꼬치 묻길래 그대로 가르쳐주었다. 중얼중얼 달달 외운 사오정이 이번엔 면접관 앞에 섰다. ‘30번입니다.’ 「이름이 뭡니까?」 ‘옛날엔 박지성이었는데 지금은 손흥민입니다.’ 「뭐요,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소?」 ‘예, 18세기입니다.’ 「아니, 당신 바보 아니에요?」 ‘예,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되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외워서 될 일이 아니었다. 흉내 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강신 무당과 학습 무당은 다르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도 흉내를 내는 것과 내가 체험하고 내가 능력을 받아서 목회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교역자들과 설교에 관한 얘기를 할 때 내가 하는 얘기가 있다. 

“내가 나의 설교에 감격하지 않았는데 듣고 교인들이 감격하겠는가? 내가 내 설교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교인들이 울겠는가? 내가 피 묻은 십자가 복음 앞에 가슴이 뛰지 않았는데 내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가슴이 뛰겠는가? 내가 내 설교에서 내가 만난 예수, 내가 만난 복음, 내가 만난 성령이 있어야 한다.”

나는 장로회신학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복무로 공군 장교 생활 5년을 마친 다음 신대원 2학년에 복학을 했다. 이때 ‘예배와 설교학’ 시간에 만난 분이 얼마 전 별세하신 고 정장복 교수님이었다. 그분은 살아있는 예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어 나르는 듯한 생명력 있는 설교 회복에 생명을 거신 분이었다. 그 분을 만난 이후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설교, 단 한 번의 예배도 적당히 그리고 허투루 드려본 적이 없다. 한 번의 예배 한 번의 이 설교가 내 생애 마지막인 것처럼 최고, 최선을 다하려고 몸부림을 한다.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하는 모든 예배자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살아있는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 내로라하는 한국 교회 그리고 전 세계 교회를 다니며 예배를 연구하고 경험하고자 몸부림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 내게 그런 연구와 몸부림을 통해 당신은 살아있는 예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확실하게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분명히 흉내 내는 예배, 외워서 전하는 설교, 본 대로 들은 대로 하는 목회가 아니었노라고 대답할 수가 있다. 

우리 교회엔 예배를 기획하는 팀이 있어 일주일 내내 예배 순서, 찬양 콘티, 강단 데코레이션, 방송 음향 영상, 안내, 물론 설교와 대표기도문 점검까지, 심지어는 찬양대와 영상팀과의 협의 등등 한 번 예배 드리고 끝날 사람들처럼 준비를 한다. 죽은 나무나 조화는 변화가 없지만 산 나무는 매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 같을 수 없고, 어제의 예배 경험이 오늘 일 수 없듯이 흉내 내는 목회, 흉내 내는 예배, 흉내 내는 사오정 설교로 시대를 살리고 교회를 살릴 수는 없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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