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농인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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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은 겉으로 보아서는 이해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그 이유는 외견상 별 장애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농인에게 호랑이 소리를 한번 설명해 보라고 하면 청인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질까?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소리의 특성을 설명하라고 하면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될 수도 있다. 바이올린 소리를 어떻게 농인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바이올린 소리와 첼로 소리는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려고 하면 이런 저런 설명을 하다가 들어봐야 안다는 생각이 속으로 나올 것이다.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차 있다. 태어날 때 내는 아기의 울음소리로부터 아기가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심장소리를 시작으로 온갖 자연의 소리와 말소리를 들으며 성장한다. 농인들은 소리가 배제된 상태로 생활해야 하기에 보는 것에 대하여 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으며 청인이 보지 못하고 지내는 것들도 상당히 민감하게 볼 수도 있다.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영화나 드라마 등을 선택하여 한 시간 음소거를 하고 관람한 후 그 느낀 바를 써내라는 과제를 내 준 적이 있다. 이러한 과제를 받은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갔다. 과제물 제출을 한 내용 중에는 처음에 왜 이런 과제를 주었는지 이해를 잘 못했는데 한 시간을 소리를 제거하고 화면을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며 느낀 바를 적어 내었다. 좋아하던 프로그램도 소리를 배제하고 보니 우선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용을 모르고 화면을 보려니 지루하기 그지없었으며 자꾸 딴 생각만 들고 집중이 안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과제를 다 하기 위해 화면을 보고 있노라니 배우의 분장중 수염이 비뚤게 붙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으며 얼굴에 조그만 점이 있는 것이나 흉터가 있는 것들도 잘 보였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그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 가며 감정이입도 되고 흥미진진하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곤 하였으나 스토리를 모르고 이를 보려고 하니 그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을 보며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어떠한 일이 진척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기차를 이해시키기 위해 어린 소녀를 데리고 철길에 가서 멀리서 기차가 올 때 철로에 귀를 대보라고 아버지가 시켰다. 농인 소녀는 철로에 귀를 대로 진동으로 기차가 오는 소리를 느끼며 멀리서 오는 느낌과 점점 다가오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었으며 바퀴의 리드미컬한 규칙적인 운동을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는 아버지가 그 딸에게 소리와 사물을 이해시키기 위한 배려임을 알 수 있다.

정보를 보는 것으로 많이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으나 보는 것에 앞서 우리는 듣는 것으로 그 보는 정보의 밑바탕을 쌓아놓고 보는 것도 듣는 것과 연관되어 기억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농인과의 의사소통 시에는 우선 잘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두운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청인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지만 농인들에게는 수어를 사용하거나 구어를 구사하는 것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불편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수어 통역자를 구석에 세워 놓거나 어두운 곳에 세워 두는 것은 청인 입장에서 보면 잘 안 들리는 마이크를 켜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수어 통역사들이 무늬가 없는 검은 옷을 입고 통역을 하는 것은 수어가 좀 더 뚜렷하게 보이게 하려는 배려이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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