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68)

Google+ LinkedIn Katalk +

배위량의 제 2차 순회 전도 여행 (47)

배위량 탐구와 연구를 위한 길 위에서의 변명(辨明)과 회오(悔悟) <4>

1. 어떤 일 때문에 어떤 일에서 손을 뗀다고 해도 잘 유지되어 알게 모르게 아무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가 되도록 하자.
2. 일을 줄이고 작지만, 알차고 규모 있게 만들어 가자.
3. 이것 때문에, 일이 잘되어 전국 규모로 확대할 경우에도 늘 그런 환경에 문호를 개방하여 함께 연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이런 구상으로 재정비하여 만들어 간다면 처음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상하고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은 관망하며 때를 기다리는 그분들도 필자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분들이 필자의 1/5 정도라도 시간을 들여 함께 한다면 벌써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지만, 모두 대기만성(大器晩成)의 꿈을 꾸는지, 아직도 때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 일의 필요성을 주창(主唱)한 필자로서는 관심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마음을 열고 함께 참여하고 힘을 합치기를 고대한다.

3.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이 일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이 일은 대부분 필자의 경험과 필자의 생각에서 나왔다. 이제부터는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게 된다면, 그 생각들을 모으게 된다면 좀 더 알찬 결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배위량이 제 2차 순회 전도한 길인 경상도 지역을 도보로 순례하면서 그 길을 따라 가면서 가까이 있는 오래된 교회를 방문하고 그중에서 중심되는 곳에서 길 위의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학술대회는 꼭 순례하는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필요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도 진행하게 되었는데, 서울서도 하고 부산에서도 하는 기회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 두 행사는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순례: 순례하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어떻게든 지키고 관리하는 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순례는 기본적으로 신앙심의 발로에 따른 행동이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그분께 대한 헌신하는 마음의 최고치가 순례로 나타난다면 가장 이상적인 출발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런 마음이 없이 출발할 수도 있겠지만, 순례를 하는 동안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당사자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변화될 것이다. 물론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순례를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순례는 기본적으로 힘들고 어렵다. 인간은 어려운 가운데 고독하게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삶이 힘들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힘들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인데,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보면서 삶의 자리를 되돌아 보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의 존재와 그리고 주위에 있는 자연을 음미하고 나아가 인간의 깊은 곳까지 관찰하시는 신(神)의 존재를 찾고 의식하게 된다면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려움도 극복하는 것이고, 인내하고 참고 견디는 것이 인생이다. 쓴 뿌리를 씹는 것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아픔과 고통이 밀려올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강한 군대는 훈련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훈련을 하지 않은 군인은 아무리 훌륭한 무기로 무장한다 해도 그것을 사용도 못하고 전쟁에서 실패하게 된다. 위대한 정신은 어려움을 당하지 않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글을 통하여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글을 통하여 아는 것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한 일은 힘이 되고 기억에 오래간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살 수는 없다. 즉 가장 단련되고 강한 군대는 전쟁 경험이 있고 전쟁에서 이긴 군대이다. 전쟁을 치르고 이긴 경험이 있으면 전쟁을 알고 대비하게 된다. 그 군대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그 전쟁에서 졌을 때 어떤 참혹함이 뒤따르는지 잘 안다.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는 군대는 스스로 훈련하면서 대비한다. 그런데, 전쟁을 치른 경험은 제한되기에 군대는 그런 전쟁을 가상하여 훈련을 하게 되고 모의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전쟁보다도 더 혹독한 일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일하게, 너무나 안일하게, 인생을 살아간다. 안일하게 아무 생각 없이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제자리걸음만 되풀이 반복하며 살아가다보면 전쟁보다 더한 고통과 좌절이 찾아 올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주 좌절하고 포기하고 살아간다. 좌절하고 포기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반드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절망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큰 고통 속에서 인내하게 되고 다시 일어설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하는 고통이 너무 엄청나다고 생각하고 포기한다.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죽음을 본다. 죽는다는 것은 실제로 죽는 죽음을 말하면서 동시에 포기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에서 인간은 많은 죽음을 주위에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래와 같은 군가를 많이 불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필자는 전후 세대이다. 직접 전쟁을 경험하지는 못해도 그 전쟁의 참상을 느끼며 자라난 세대이다. 어린 시절 그 많은 거지들과 먹을 것을 찾아 멀리 시골까지 몰려다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사랑하고 아끼던 전우가 전쟁에서 전사를 해도 그때문에 그곳에 주저앉아 있질 못하고 다른 사명을 강당하는 것이 군인이다.
그런 실상과 아픔을 가수 현인은 ‘전우야 잘자라’란 제목으로 위의 군가를 불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은 때때로 혹독한 겨울과 같고 전쟁과 같은 회오리가 몰려 올 수도 있다. 부모는 아무리 어려워도 자식들 앞에서 그 아픔을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안으로 삭이게 된다. 그런 정도가 너무 심하면 부모에게도 정신적인 질고가 찾아 온다.
순례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고해와 같은 인간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행위이다. 배위량이 걸었던 길 위에서 하나님을 진실히 찾고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을 찾고 이웃을 찾아 가는 길이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