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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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의 제 2차 순회 전도 여행 (62)

구미에서 상주까지 (10)
구미시 해평면에서 상주시 낙동면으로 가는 길에 구미보와 낙단보가 있다. 이것들은 낙동강의 물줄기에 우람하게 서 있고 많은 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배위량 길을 걷다 보니 어느 쪽으로 어떻게 길을 내는 것이 좋을지, 만약 우리가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배위량을 기념하는 무엇을 조성한다면 어떤 면에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나무에 대한 관심과 풍경의 예술적인 면에 관심이 있어 ‘조경’ 쪽으로 조금 공부를 하여 조경기사 국가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생태학을 연구한 적이 아직 없어 생태학적인 면에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하여 글을 쓰는 데 많이 부족하여 길게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농민들에게는 유익함이 많다. 보가 놓임으로 농민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을 누리게 된다. 우선 사시사철 그 지역 농민들은 농사지을 물을 확보하게 되어 농사를 짓는데 물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은 기계를 돌리고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어린 시절 비만 오면 온 동네가 물난리를 겪었고 학교도 가지 못하고 물이 빠지기까지 집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보가 주는 많은 편리함을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대구 근교에 있는 금호강의 강바닥에도 잡초가 많이 자란다. 이런 일은 다른 곳에도 예외가 없는 것 같다. 필자가 어린 시절 자랐던 마을로 흐르는 회천강은 가야산 줄기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었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친구들과 1급수에서만 산다는 은어를 잡기 위해 온 강을 뛰어다닌 생각이 난다. 그때 강에는 온통 깨끗한 모래로 이루어진 백사장이 많았고 그 백사장으로 흐르는 물은 맑고 깨끗했다. 그 강에 지천으로 많았던 모래는 건축 공사장으로 실려 나가고 모래가 실려 나간 자리에는 상류에서 내려온 퇴적물이 쌓이고 그것이 썩어 강바닥이 초원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군의 환경학자들은 이런 원인을 보에서 찾고 보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말한다. 일군의 환경학자들은 그 원인을 보에서 찾는 것을 거부하고 보가 주는 유익을 말한다. 지금 한국은 4대강에 만든 보를 그대로 유지하느냐 그것을 헐고 원래 강의 모습대로 만드느냐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배위량 길을 걷다 보면 환경론자들은 보 근처에 보를 해체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담은 플래카드를 걸어 두고, 농민단체들은 보 해체를 결사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걸어 둔다. 어떤 곳을 지날 때 전쟁터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때도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기에 농사를 곁에서 보며 자랐다. 농번기 때나 바쁜 때 돕기는 했지만, 직접 농사를 지은 적이 없다. 그래서 농민들처럼 보가 주는 유익함을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보가 주는 유익함이 많다고 생각된다. 어릴 때 보면 초봄에 온 마을 사람이 동원되어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보를 보수했다. 홍수가 나면 자주 동네 앞까지 물이 밀려와 온 토지가 물에 잠기고 학교로 가는 길도 물에 잠기고 보도 파괴되곤 했다. 요즈음은 어느 시골 마을에 가도 보를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 두었다. 그래서 농민들이 어렵지 않게 논에 물을 대고 밭에 심을 작물에 물을 공급한다. 철이 바뀌거나 홍수가 나도 지금은 옛날처럼 동원되어 보를 수리할 마을 장정이 없다. 농촌 인구의 급격한 하락으로 농촌이 비어가기 때문에 그런 일을 맡아 할 사람이 없다.

보를 해체하는 것은 농사 지으며 삶을 영위해야 할 농민들에게는 물을 빼앗는 것이 되고 그것은 어쩌면 그들에게서 삶의 전부를 빼앗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로 인하여 파생되는 환경문제들도 만만찮다. 그래서 이왕 보를 만들었으니, 급하게 보를 철거하거나 해체하기 보다는 여러 해 여러 지역에 걸쳐 보가 주는 유익과 그 해악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한 후 농민들과 환경학자들 그리고 보를 찾아 휴식을 누리는 도시민들까지 포괄하는 대표기구를 만들어 토론을 통해 답을 산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향에서 우리 국토를 지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존하여 후손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일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를 보존하느냐 해체하느냐의 문제는 이미 환경론자나 농민들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순회전도 여행을 하기 위하여 배위량이 걸었던 ‘배위량 길’을 필자가 순례하면서 부산->양산->물금->삼랑진->밀양->청도->가창->대구->구미->상주->예천 용궁->풍산->안동->의성->신녕->영천->경주->울산->부산에 이르는 모든 경로를 여러 번 걸었다. 이 길을 걸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한강의 둑길을 따라 달린 후 다시 들길과 산길을 달려 문경새재를 넘어와서 낙동강을 따라 건설된 자전거 도로 위를 달려 부산까지 가는 경우도 그 반대 방향을 가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이런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구미보나 상주보 등으로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도 많이 만났다. 이들에게 4대강에 만든 보는 이미 하나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필자와 같은 세대 사람들 중에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 않을 사람들은 4대강 사업과 보 공사로 환경이 옛날과 다르게 너무 많이 변해버려 그것이 익숙하지 않아 그 환경이 많이 어색하고 아쉽다. 낙동강의 경우만 해도 보가 없는 상류 쪽에 대해서는 시인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관련하여 낙동강을 노래하지만, 중류나 하류 쪽으로 가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환경 문제와 관련된 시들이 많이 나왔다. 어찌면 보는 오늘 우리에게 풍요와 발전의 터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소중한 문학과 예술과 추억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땔감을 만들기 위하여 산에서 나무를 많이 베어 왔기에 산에 나무가 별로 없었다.

일제시대 일본군에서 사용했던 비행기나 전쟁무기에 이용하는 기름이 모자라 소나무에 흠집을 내어 송진을 모아서 그것을 기름 대신 사용했다. 이런 일 때문에 산이 황폐화되었다. 그리고 6.25전쟁의 전쟁터가 된 곳의 산이 많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산에 나무 하러 다닌 기억과 나무를 심으러 다닌 기억이 난다. 당시 시골의 난방은 모두 온돌이었기에 산에서 나무를 해서 그것으로 땔감을 만들었다. 이런 저런 것들 때문에 산이 황폐하여 만들어진 민둥산이 부지기수였다. 당시에 필자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뒷산은 민둥산이었는데, 식목일이면 늘 전교생이 동원되어 그 민둥산에 소나무 등의 나무를 심고 물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의 과제로 잔디 씨를 모아서 가져가기도 했고 아카시아 씨를 따서 말려 가져가기도 했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산에 나무를 심는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당시 산에 나무가 귀했는데, 그런 와중에 소중한 소나무의 잎을 송충이가 갉아먹는 일이 허다하게 많이 벌어졌다. 그 피해가 너무 커서 어린이들에게 송충이를 잡아오게 하는 숙제도 있었다. 송충이를 잡아오면 공책 몇 권을 상으로 주었다. 어린 송충이는 덜하지만, 솔잎을 먹고 제법 크게 자란 송충이 털에는 독이 있어 털에 접촉하면 두드러기처럼 쓰리고 아파 친구들이 즐겨 송충이 잡는 일이 어려웠다. 어릴 때 필자의 친구 중에 안성모란 한 성실한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숙제로 송충이를 많이 잡아왔다. 그래서 그가 공책을 제일 많이 받게 되어 반 모든 친구들이 그를 부러워했던 일이 생각난다.

구미보에서 낙동면까지 가자면 구미시 도개면과 의성군 단밀면을 거쳐 지나가야 한다. 배위량은 1893년 4월 25일 밤을 해평에서 잠을 잔 후 26일 저녁에 상주시 낙동면에 도착했다. 배위량이 해평면에서 낙동면까지 갈 때 어떤 길을 걸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교통 시설이 열악했단 당시의 사정으로 유추해 볼 때 해평면에서 구미시 도개면을 거쳐 의성군 단밀면으로 와서 낙동면으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갔을 것이다.
구미시 북동부에 있는 도개면(桃開面)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이 지역민들은 낙동강 일대에 형성된 충적지 평야에서 주로 논농사를 한다. 이것은 도개면의 주된 생업 수단이다. 도개면의 낙동강 유역 충적지에 취락(聚落)과 도로가 밀집해 있다. 이 충적지에 놓인 도로를 통해 대구, 상주 그리고 김천 등지로 연결된다. 도개면의 북쪽은 의성군 단밀면과 접하고 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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