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고 김창인 증경총회장님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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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러러볼 ‘큰바위 얼굴’로 우뚝 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의 기운이 꽁꽁 얼어 붙어있던 대지를 봄 동산으로 바꾸고 있는 때, 오늘 우리는 민족 교회를 영광스럽게 섬기셨던, 그래서 보내드리고 싶지 않은 한 어른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이지만 영적으로 어둡고 혼미한 때여서, 후배들에게는 목회의 ‘스승’이 필요한 때여서,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목자’가 필요하고, 교회에는 바른 방향을 지로(指路)해 줄 ‘어른’이 필요한 때여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일겝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영원한 본향을 향해 가시는 걸음을 붙잡을 수 없어서 가슴에는 슬픔과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오래전, 북녘땅, 황해도 은율, 고향 집에 부모님과 두 여동생을 남겨두고 민족의 어두운 밤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오셨지요. 난리가 끝나면 다시 뵐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내려온 걸음이었지만 이 땅에서는 부모님 얼굴을 다시 뵙지 못하셨고, 이산가족의 한과 그리움을 안고 평생을 사셨지요. 하지만 이제 영원한 본향에 입성하셨으니 평생 그리워하셨던 분들 만나 뵙고, 춤추고 계실 목사님이 그려집니다.

그 아픔과 한을, 그리움을 주님 향한 헌신으로,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사랑으로, 민족 복음화를 향한 열정으로 목사님은 참 멋지게 풀어내셨지요. 민족상잔 전쟁 중에 혈혈단신 생명을 걸고 사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셨으니 그 어려움과 고생은 얼마나 컸을까요? 의지할 이 하나 없는 남녘땅에서 피난민으로 살아가면서 목사님은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셨고, 말씀 따라 믿음으로 걸어가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많은 길들 마다하시고 하나님의 세계를 이 땅에 가득 펼치시기 위해 목사님께서는 굶주림과 어려움 속에서도 신학공부에 매진하셨고 주의 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실로 목사님의 삶은 끊임없는 영적 전쟁의 현장이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가난과 굶주림과 싸우셔야 했고, 폐를 갉아먹는 폐결핵 균과 사투를 벌이셨습니다. 각혈하시며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날마다 확인했던 어두움과 절망의 시간,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시는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절망도, 슬픔도, 불치병도 그렇게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렇게 고난으로 얼룩진 인생길에서 목사님은 영적 전사가 되셨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전진하도록 진두지휘하신 영적 지휘관이 되셨습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피난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함께 모여 시작한 광성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 받으신 후 목숨을 건 사역은 평생의 영적 전투였습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도 살아나 주의 군대가 되는 역사를 믿었던 목사님은 그래서 말씀 사역에 온 생명을 걸었습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던 때에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았던 기도의 사람으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설교자로, 노회와 총회를 섬기는 교회 행정가로,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을 위해 귀히 쓰임 받는 목회자로 우뚝 일어서셨습니다. 모든 힘을 쏟아 준비한말씀을 들고 서신 강단에서는 언제나 차분하면서도 강력한 불을 내뿜으셨습니다. 목회자의 흐트러짐과 허우적거림에 대해서는 불호령을 내리셨고, 대쪽 같은 강인함 속에서도 후배들을 아끼시는 사랑과 따뜻함은 항상 잃지 않으셨습니다.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신 후, 평생 섬기신 교회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눈물의 기도는 더 간절해지셨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사랑, 은혜에 대한 감격과 고백은 더 깊어지셨습니다. 평생 ‘내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에 푹 잠긴 삶이었다’고, ‘은혜 아닌 것이 없다’고 더 크게 증언하셨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마지막 힘을 모아 자녀들과 성도들에게 그것을 증언하셨습니다.

목회자가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선다는 생각에 그 바쁜 목회 현장에서 촌음을 아껴가며 기차에 피곤한 몸을 싣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신학교의 수장으로 신학교육에도 헌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육을 감당하는 후배들을 늘 귀히 여기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가끔 전화 주셔서 어려운 때 얼마나 수고가 많냐면서 늘 따뜻한 격려와 당부를 잊지 않으셨지요. ‘김총장, 신학교가 살아야 합니다. 신학교의 오늘이 한국교회의 미래입니다. 우리 학생들 잘 가르쳐 주세요.’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 나면 진종일 마음속에 깊은 사랑의 울림이 여운을 남기며 마음에 스며듦을 느꼈습니다. 목사님은 정말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구나, 절로 고개가 숙어졌습니다.

사랑하는 김창인 목사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국교회 큰 스승으로 우뚝 서 계셔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목사님의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을 교회사가들은 기록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인정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주님께서 미소 짓는 것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은 다 헛것이다.’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가 했던 그 고백으로 평생을 사셨고, 목사님은 언제나 주님의 미소를 욕심내며 달려오신 분이셨으니까요. 민족의 캄캄한 밤에 교회와 성도들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달리셨던 목사님의 수고와 눈물, 주님의 교회를 향한 헌신을 기억하시며 미소 지으시는 우리 주님의 칭찬, 지금 듣고 계시지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했다. 고마웠다. 고통도 없고 눈물도 없는 나의 나라에 와서 쉬어라…” 그래서 밧모섬에서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보내던 사도 요한은 계시의 말씀을 받아 전하면서 “주안에서 죽은 자는 복이 있다”(계 14:13)고 말했을 것입니다.

목사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국교회 큰 어른으로, 목회자로, 후배들이 늘 우러러볼 ‘큰 바위 얼굴’로 우뚝 서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보좌 앞에서 다시 뵈올 때까지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김운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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