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름다운 여인의 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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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자연은 참으로 처연하기만 하다.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울까. 하늘의 은총이 저리도 풍성할까. 눈길이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자연의 품속을 느끼게 한다. 눈부신 햇살, 철쭉꽃으로 뒤덮인 5월의 정경은 그 어디를 보나 영롱하고 포근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더 이상 집안에서 원고만 쓰고 있을 수 없어 모든 것 다 제쳐두고 우리 아파트에 딸린 공원으로 나갔다. 

그 공원에 이르렀을 때 30세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앞에는 젖먹이 어린애가 유모차에서 고이 잠들어 있었고 그 유모차 손잡이엔 실로 짠 시장바구니가 걸려 있었다.

그때가 오후 4시경이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출근시켜 놓고 오전 내내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놓고는 저녁 찬거리를 사려고 시장에 가려다가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이곳에 찾아왔으리라. 그리고 어린애가 잠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폈으리라. 

그 여인의 옷차림은 수수했고 얼굴빛과 볼그스레한 입술은 자연의 빛인지 화장으로 조화를 이룬 것인지 나로서는 분간할 수 없으리 만큼 퍽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녀의 머리는 곱게 빗어 뒤로 잡아매었는데 머리카락에 흐르는 윤기는 아름다움을 더했을 뿐 멋을 부린 흔적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의 손등 역시 뽀얀 살결에 탄력이 넘치는 듯하나 집안 살림 탓인지 어딘지 모르게 손결이 좀 거칠어 보인데도 그러나 정숙한 아름다움이 그녀의 자태에서 흐르고 있다.

나는 순박하면서도 청순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기품에 한동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책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갖 꽃들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녀의 모습에 비교할 것인가. 과연 그녀의 얼굴이야 예쁜 데라고는 별로 없는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는 그 매력에 끌리고 있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젊음의 탓일까? 아니면 그의 정신적 향기가 내 마음을 자극시킨 탓일까. 이렇게 자문자답해보기도 했다.

그녀의 손결이 좀 거칠게 보이는 것은 부지런히 살림을 해온 탓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매일같이 일하고 있는가. 인생은 누구나 평탄하지 않아서 심한 어려움에 부딪힐 때도 더러 있을 터인데 그런 어려움은 없었을까. 인생에 반드시 찾아온다는 고난의 의미는 무얼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복도 주셨지만 제각기 해결해야 할 과제도 겸하여 주신다. 이것을 참고 견디며 해결하려면 그 길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흘려보낸다면 그 당시는 편리해서 좋았지만 그 결과가 어찌 될까. 이 문제는 너무 철학적인데다가 고통이 따르는 거라서 그냥 흘려보내기 쉽다. 그러나 언젠가는 고난의 대가가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라서 우리는 가볍게 넘기거나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인생을 살아갈 때 값있게 산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고난을 승리로 이끄는 일이다. 위대한 역사도 그렇고 예술도, 개개인의 삶도 역시 그렇다. 프랑스 소설가 ‘로망롤랑’이 쓴 ‘미켈란젤로’라는 책에서 그가 죽기까지 제일 아꼈던 작품은 ‘승리자’라고 했다. 그 조각은 전쟁에 나간 왕이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했는데 그가 적장의 머리를 손에 쥐고 목덜미를 자기의 무릎으로 짓누르면서도 원수의 목을 차마 찌르지 못하고 얼굴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고난을 승리로, 또 패배는 처절함으로 작품화시킨 조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평화스러운 얼굴로 유모차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어린애의 모습, 남편의 식탁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쏟을 시장 바구니, 한 가정을 구축해 올리기 위해 약간 거칠게 보이는 손결, 자아의 성장을 위해 짧은 시간임에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독서에 힘쓰는 그녀의 고귀한 정신적 자세,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인간의 행복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며 단란한 가정은 어디서 싹트는 것일까? 아내의 역할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성의 위치를 곰곰이 따져 보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 몸도 마음도 커가는 자녀들, 꿈도 낭만도 가꾸고 북돋우는 역할도 어머니다. 그리고 아내의 친근한 애정 속에 희열이 피어오르고 모든 일에 의욕을 심어주는 근원은 아내의 힘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서서히 공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진정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감지해 봤다.        

하재준 장로

<수필가·문학평론가, 중동교회(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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