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시가 갖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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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의 노벨상, 아니 노벨상보다 타기가 더 힘들다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고등학교 때 기형도의 시를 읽다가 시인이 되고 싶어 학교를 자퇴했다고 한다. 얼핏 시를 좋아해 학교도 그만두었던 청년이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었다는 것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수학과 시가 만나는 접점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송하는 소월 시 몇편을 읽어보려고 한다. 

①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 영변(寧邊)의 약산(藥山) / 진달래꽃 /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 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김소월 / 진달래꽃). ② “그립다 /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 그래도 다시 더 한번… // 저 산에 까마귀, 들에 까마귀 / 서산에는 해 진다고 / 지저귑니다 // 앞강물 / 뒷강물 /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김소월 / 가는 길). ③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김소월 / 먼 후일). 김소월의 시들은 왜 인기가 많을까? 어렵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크다. 그의 시는 낮은 자리의 시다. 유식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소월의 시는 흔한 감정을 다룬다. 헤어짐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파도 참았던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그뿐만 아니라 소월의 시는 어쩐지 술술 읽힌다. 반복이 많은 것 같은데 지루하지 않고 비슷한 말의 뉘앙스가 새롭다. 위에 소개한 <진달래꽃>, <가는 길>, <먼 후일> 같은 시. 절창이라고 알려진 소월의 작품이 모두 그렇다. 이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4연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기승전결처럼 딱 닫힌 완전함을 느끼게 한다. 안정감을 준다는 말이다(나민애의 평). 이런 시적 감정은 다음 시에도 비슷하다. ④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 겨울의 기나긴 밤 /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 옛 이야기 들어라 // 나는 어쩌다 생겨나와 / 이 이야기 듣는가? / 묻지도 말아라, 내일날에 /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김소월 / 부모). 아울러 허준이 교수가 고교에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게 만든 기형도의 시는 또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런 인력(引力)을 발휘했는가? 

고교 자퇴하고 PC방 다니던 수포자가 수학계 노벨상을 품었다(필즈상). 그는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는 시도가 詩라면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물리로 표현하는 것이 수학이라고 한다. 일찍이 시 100편을 몸에 담으면 사특함이 없어진다는 공자의 말도 기억할 만하다. 기형도 시인은 생전에 한 권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냈다. ⑤ “열무 삼십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세상 누구나 가진 엄마 걱정은 / 어린 마음에 다 같은가 봅니다”(기형도 / 엄마 걱정). 기형도 시인의 원점은 1975.5.16. 누이의 죽음에서 찾아야 한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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