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 일본의 개(犬)가 되다… 그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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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는 속에 담아두고 지금까지 참아 왔던 말을 지금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하기 싫었던 말이지만,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춘원의 얼굴이 금새 새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운허 입에서 이처럼 모욕적인 말이 튀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다른 사람 아닌, 둘도 없는 운허가 이런 혹독한 말을 내 앞에서 여과 없이 내뱉다니.

그 순간 춘원은 정신이 아찔했다. 운허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운허는 하던 말을 다시 이어 나갔다. “춘원! 춘원이 지금까지도 품고 있는 자아의식은 병들어 있는 거 같아. 열등감에 짓눌리다 못해 거꾸로 솟아오르며 변질된 그 우월감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신을 이성적으로 컨트롤 못하고 있었던 거야.

다시 말해 내가 임자고, 내가 조선이고, 그래서 내가 아니면, 이 나라 조선은 서서히 망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과대망상적 자아의식 때문에, 그래서 그때 자신을 헌신적으로 불태워야만 했고, 스스로 희생하고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던 거야.”

여기까지 힘들게 속마음을 털어내는 운허의 눈빛에는 그 어떤 결의에 찬, 슬픔같은 그림자가 어둡게 비치고 있었다. 운허의 속마음에서 우러나는 이 엄청난 경종의 폭탄 지적이어서, 이제 춘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누구보다 자존감이 강한 춘원이지만, 운허의 말에는 그저 무응답으로 조용히 경청하면서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운허마저도 내 마음을 잘 모르고 있다니!”

춘원은 앉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문을 열고 운악산 정자 방향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걸음이 어쩐지 약간은 불안해 보였다. 결국 춘원은 얼마 못가서 맥없이 그 자리에 풀석 주저앉아 버린다. “내 내 내가 과대망상증 환자라구? 운허마저 어찌….”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춘원은 눈앞이 아찔했다. “과대망상적 자아의식 때문이라구…. 정말 미친 소리….”

춘원은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는 붉은 석양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허! 석양 노을이 참 아름답구나….” 춘원은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피울음으로 오늘 밤도 ‘렌’은 ‘시몬’을 부르고 있다

모윤숙(毛允淑)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의 유명한 여류 시인이며 수필가이다. 그녀는 일찍이 이화여전 23세 꽃다운 나이에 처녀시집 <빛나는 지역> 등을 발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춘원 이광수는 이 시집 서문평에 이렇게 적었다.

“불꺼진 조선의 제단에 횃불을 켜놓으려는 시인”이라고 극찬했다. 춘원은 누구보다 모윤숙의 발랄한 성격과 문학을 사랑했으며 자신을 잘 따르는 그녀를 좋아했다. 17살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문학이란 한 울타리 안에서의 연배를 떠나 언제나 동지애와 아름다운 문학이 있었고 훈훈한 사랑이 있었다.

“선생님! 제가 이번에 처녀 시집 <빛나는 지역>을 출간해요. 춘원 선생님의 서문(序文)으로 저를 축하해 주세요.” 모윤숙은 주변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다 제치고 제일 먼저 원고 뭉치를 안고 춘원을 찾아왔다. “써 주고 말고…. 당연히 써야지!” 춘원은 기쁜 모습으로 그녀의 간청을 쉽게 수락하고 격려했다. 춘원은 그의 서평 서문에서 또 이렇게 적었다.

“조선에는 ‘허남설헌’이라는 여성 한시인(漢詩人)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말을 가지고 조선 민족의 마음을 읊은 여시인(女詩人)으로는 아마 모윤숙 여사가 처음일 것이다. 여사는 조선의 땅을 ‘안으려’하는 시인이다. ‘검은 머리를 풀어 허리를 매고 힘차게 불꺼진 조선의 제단에 횃불을 켜놓으려’ 한다고 외치는 시인이다.

나는 모윤숙 여사가 영원한 습작자(習作者)로 자처하고 지나간 업적을 연방 불에 살라보려 가면서 조선의 혼의 더 큰 소리로 더 기운차고 더 간절하고 더 아름다운 소리로 부르짖고 나아가고 올라가는 일생을 가지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모윤숙을 몹시 치켜세웠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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