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교회(敎會), 세상의 소망(所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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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프랑스대동맹 전쟁에 패하면서 지금의 노르웨이 땅을 잃고, 1864년에는 프로이센에 의한 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 패해 독일에게 국토 3분의 1을 빼앗기고 잡초만 무성하고 황무지같이 다듬어지지 않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쫓겨난 덴마크는 그야말로 황폐한 패배자들의 나라였다. 국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았고 삶의 소망은 사라졌다. 그런데 술주정뱅이들의 하소연과 한숨이 들끓던 덴마크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오늘까지 덴마크의 국부(國父)로 존중받고 있는 그룬투비(Nikolaj Grundtvig) 목사다. 그는 소망을 잃고 희망의 끈을 놓쳐버린 국민들을 향해 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내 가정을 사랑하자!고 외치며 희망과 소망을 노래했다. 그리고 덴마크는 오늘날 세계최고의 부와 안락함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교회도 일제치하의 가난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치면서 황폐된 삼천리 금수강산에 희망을 노래했고 꺼져가는 소망의 불씨를 동족들의 가슴에 지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 운동 주제가(主題歌)는 교회의 새벽기도 종소리를 차용해 왔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교회가 왜 세상의 소망이고 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가?

1. 교회는 세상의 오염을 막고 빛을 비추는 유일한 소통창구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3-14)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올 1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1%,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4%로 집계됐다. 불신한다는 응답은 기윤실이 2008년부터 총 7회에 걸쳐 시행해 온 역대 조사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기윤실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지난 2월 16일 발표했다. 개신교·가톨릭·불교 중 ‘가장 신뢰하는 종교’에는 가톨릭이 꼽혔다. 가톨릭은 21.4%로 개신교 16.5%, 불교 15.7%보다 더 많은 신뢰를 받았다. 가장 호감 가는 종교로도 가톨릭(24.7%)이 꼽혔다. 오차 범위 이내에서 불교(23.4%)가 뒤를 이었다. 반면 개신교는 16.2%로, 두 종교와 오차 범위 바깥으로 벌어져 낮은 호감도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시대의 소망이고 희망의 보루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교회야말로 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등불이고 맛을 내는 소금이기 때문이다. 

2. 교회는 아직도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하나님 사랑의 보루(堡壘)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어느 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 나가보니 누군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두고 갔다. 강아지와 함께 사료와 강아지 장난감, 그리고 “이름은 캔디입니다”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누군가 정 들여 기른 강아지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그래도 교회에 맡기면 보살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놓고 간 것이다. 목사님은 그 강아지를 사택에 안고 들어가면서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교회 얘기만 해도 거품 물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에 강아지를 몰래 갖다놓으면 거둬 보살펴 줄 것으로 여길 만큼, 교회에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저러니 교회를 향해서 삿대질을 하고 욕을 퍼부어 대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교회를 향한 기대와 소망을 붙잡고 있는 이들이 많기에 아직도 교회는 이 세상의 소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 교회는 죄악에 노출된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구원의 방주(方舟)이기 때문이다.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창 7:7-9)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는 노아의 8식구와 함께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함께 들어갔다. 교회는 착하고 죄없는 사람뿐 아니라 허물많고 자격없는 부정한 사람들도 들어와서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누리는 세상의 유일한 구원의 방주이다.

세상에 착한 일 많이 하고 어려움 만난 이웃들을 섬기는 사회봉사단체와 기구는 수도 없이 많지만 죄인들을 구원해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방주는 오직 교회 밖에 없다. 

속사도 교부중 한 사람이었던 키프리안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다소 과격스러울 만한 주장을 통해 구원에 대한 교회의 의미를 설파한 바 있다.

하나님은 이 험한 세상을 구원하시고 통치하시는데 교회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생명구원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교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험한 세상과 천국을 잇는 구원의 방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소금처럼, 교회를 빛처럼 사용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상의 소망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흔들리고 소망의 불빛이 희미해져 갈 때 오히려 희망과 소망의 노래를 부르고 강렬한 천국의 희망을 심는 유일한 곳은 바로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소망일 수 밖에 없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이진구 목사

<목포성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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