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상기하자 6·25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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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라고도 불리는 6·25 전쟁은 현대에 들어서서 일어난 여러 전쟁 중에도 엄청나게 그 규모가 큰 전쟁으로, 마침 내가 7살때에 일어났지만 이를 직접 경험한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그 참사를 기억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공격해 불과 3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는 엄청난 위기의 전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신앙심이 깊은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이 재직했으며, 하나님은 그를 통해 우리 민족이 그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셨다. 아직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변방 국가인 한국을 위해 트루먼 대통령은 즉시 참전을 명했고, 그가 이끄는 미국을 비롯한 UN군은 3년여에 걸친 전쟁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50년 7월1일에 미군이 처음으로 참전한 후에 전사자 5만4,246명, 실종자 8,177명, 포로는 7,140명 그리고 부상자 10만3,284명을 내면서 모두 17만2,8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세기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때에 전쟁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군인은 물론 지도자들조차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나라인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현실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정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 엄청난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1973년 7월27일에 우리가 원치 않는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70여 년이 지나면서 경제적인 부흥을 이루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로, 그리고 국가가 부강해지면서 이제는 세계의 선진국 반열에 서게 되었다. 

얼마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여러 가지 획기적인 일들이 일어났는데 내가 큰 감동을 받은 일은 4월25일에 양국 대통령 부부가 함께 미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참배했던 사건이었다. 이곳에서 양 정상은 “6·25 실종 장병 끝까지 찾겠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는 국민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의무를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다. 

현재 러시아와 앞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온 국민이 거대한 러시아를 상대로 목숨을 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의 조국을 도와달라는 애원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따뜻한 반응이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들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식의 냉소를 보내는 현실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온 국민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나가는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어느 젊은 우크라이나 군인이 후방에 있는 어머니께 보내온 편지는 이런 절박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 저도 이제는 힘을 보탤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나, 어머니를 둔 자식들이 있습니다. …”

70여 년 전에도 세계 자유를 위해 이름도 모르는 나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준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도 이 세계는 이만큼이나마 운영되고 있다.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지금은 총성 없는 전쟁의 연속이라고 모두들 말한다. 우리에게는 호시탐탐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북한이 있다. 예전의 쓰라린 과거를 잊지 말고 멸공의 그날까지 우리의 본분은 언제나 ‘상기하자 6·25’를 다짐하는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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