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이해창 ‘하모니카 할아버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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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진 분 중에 《이해창 하모니카 할아버지》를 기억하시는지요? 1970년대 초반, TV의 “어린이 시간”에 한 코너를 맡아 옛날이야기도 들려주시고 하모니카도 연주해주셨으며 어린이들에게 항상 좋은 얘기를 해 주셨던 분인데요. 하모니카를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부셔서 그분의 별명이 《하모니카 할아버지》였던 이해창(李海昌, 1924~2002) 선생님이시지요. 만일 생존해 계시다면 금년 우리식 연세로 100세가 되십니다. 

그 어른은 문 장로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에 있던 ‘분원초등학교’에서 우리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손수 풍금을 치면서 음악을 지도하였는데 이해창 선생님의 풍금실력은 탁월하셔서 음악시간이면 고학년의 음악을 전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이석리(二石里)가 고향인 선생님은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의 《경성전기학교, 現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前身》에 재학 중, 밴드부 소속으로 악장을 맡아 여러 가지 악기를 즐겨 부셨고 해방 후, “초등학교교사 선발시험”에 합격하여 분원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여동생인 ‘이춘자(李春子, 1940~ )’는 문 장로와 같은 반 친구였습니다.

문 장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해방 이듬해인 1946년이었는데 1949년 우리나라에는 온 나라가 경악(驚愕)할 만한 불행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주석(主席)을 역임하셨던 김구(金九, 1877~1949) 선생께서 서울 종로구 평동, 선생의 사저(私邸) 경교장(京橋莊)에서 당시 육군 포병 소위(少尉), 안두희(安斗熙, 1917~1996)의 흉탄(兇彈)에 쓰러져 별세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김구 선생은 온 나라가 존경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별세하신 것이 1949년 6월 26일이었는데 7월 5일 10일장 국민장으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정부는 서둘러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노산 이은상의 노랫말에 김성태의 곡을 붙인 조가(弔歌)가 장례식 직전 며칠 간 라디오로 방송되었는데 그때 우리 학교에서는 이해창 선생님께서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악보에 곡과 노랫말을 적어 전교생에게 가르쳐 장례식 날 전교생이 운동장에 도열해서 확성기를 통해 중계되는 장례식 순서에 따라 “애도의 조가”를 함께 불렀습니다. 어언 74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당시 우리가 불렀던 조가의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오~호 여기 발 구르며 우는 소리/ 지금 저기 아우성치며 우는 소리/ 땅도 울고 하늘도 울고/ 이 나라 이 겨레가 미친 듯 우는 소리를/ 님이여 듣습니까, 님이여 듣습니까?” 한창 총기(聰氣)가 좋던 어린 시절에 배운 노래여서 엊그제 배운 노래처럼 그 곡과 노랫말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1964년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하모니카 할아버지』는 서울 중앙방송국 라디오 어린이 시간을 맡아 하모니카를 불면서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준 이래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들 사이에 《하모니카 할아버지》로 별명이 붙게 됩니다. 당시 이해창 선생님은 항상 노인 분장(扮裝)으로 출연을 했고 또 독특한 노인음색을 통해서 보여주는 모습은 영락없는 70대 할아버지였습니다. 서울 성동구 신당동 자택에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의 집』을 여시고 “좀 더 널리 어린이들을 만나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어서”라고 무료 『동화의 집』을 마련한 동기를 밝히신 기록이 나옵니다.

훗날 선생님께서는 직장을 경기도 화성군청으로, 다시 경기도청으로 옮겨가며 일하신 13년 동안 수원과 서울 등, 당신의 거처를 옮겨가는 곳마다 어린이들을 모아 노래를 가르치시고 스스로 지은 동화를 들려주시곤 하였습니다. 

한 가지 의문은 그 어른께서 왜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계속해서 가르치지 않으시고 관공서로 직장을 옮기셨는지 궁금했었는데 최근에 지인을 통해 듣고 보니 당시 공산치하에서 공산당국의 지시로 우리들에게 “북쪽의 노래”를 가르치신 것이 문제가 되어 전쟁이 끝난 후, 타의에 의해 학교를 떠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평생 동안 어린아이들의 맑고 밝은 정서 함양을 위해 헌신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오늘 새삼 그립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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