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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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날개 찢긴 들오리 한 마리 ①

보이스카우트서 유사시 대비법 배워

‘새벗’에 동화로 쓰인 소년촌의 실화

상처난 들오리 정성껏 치료해 회복

소년촌 들어온 날, 생일로 만들어줘

나루터가 있는 안전지대까지 줄을 매어 놓고 그 줄을 잡고 강가에까지 나간다. 거기서 우리들은 목청껏 우리들의 교가를 부른다. 그리고는 강 건너에서 우리들을 구하기 위해서 건너온 배에 제일 작은 아이부터 차례로 배에 태워서 강 건너로 피신을 시키는 것이다.

다행한 일은 해마다 겪는 물난리에도 우리는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장마가 일어나도 무섭지 않았고, 황 목사님이 함께 계시면 어떤 고난이라도 침착하게 이겨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는 소년촌 안에 보이스카우트를 조직해 유사시에 대비하는 법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그 방법들은 사실로 우리들에게 유익하게 이용되었다.”

‘들오리 이야기’

“우리 모두가 황 목사님을 결부시켜서 오랫동안 잊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기억하는 하나의 재미있고 가슴 아픈 실화가 있다. 이 이야기는 <새벗>에도 잠깐 동화로 실린 적이 있지만, 우리 난지도 소년촌에서 사실로 있었던 실화였다.

먼저도 잠깐 얘기했지만 난지도 소년촌에는 고아들이 직접 돌보는 큼직한 목장이 있었다. 미국 텍사스에서 왔다는 돼지가 몇 마리 있었고 송아지가 있었다. 그리고 닭, 오리, 토끼 등을 아이들은 재미로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날개가 부러진 들오리가 이 목장 근처에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났다. 아마 포수가 총으로 쏜 것이 빗맞은 모양으로 한쪽 날개가 몹시 상해 있었다. 목장을 돌보던 아이가 그 오리를 부둥켜안고는 황 목사님께 울면서 뛰어왔다. 불쌍하니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 달라는 것이었다.

황 목사님은 곧 그 오리를 병원으로 가지고 가셔서는 사모님께 치료를 부탁하셨다. 들오리의 치료는 심각한 표정으로 모두가 들여다보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먼저 상처를 소독하고 머큐롬을 바르고 붕대를 매주는 치료였다. 황 목사님 사모님은 이화여대 약학과를 나오신 약제사 면허증을 가지고 계시는 정식 약제사였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틀림없이 그 오리를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성급한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모두들 간밤에 오리가 잘 자고 상처가 나아가는 것을 환성으로써 계속 지켜 보았다.

들오리의 치료는 꽤 여러 날이 걸렸다. 그러나 사모님께서는 한 번도 그 들오리의 치료를 거부하거나 귀찮게 여기시지 않았다.

드디어 들오리는 먹이를 먹기 시작하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나는 흉내를 내면서 아이들과 친해졌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집오리 속에서 들오리를 섞어서 기르니까 집오리들이 모이를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는 항상 들오리를 쫓아내는 것이었다. 황 목사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의논해 들오리를 날려 보내기로 했다.

황 목사님의 손을 떠난 들오리는 높이 날아갔다가는 다시 아이들 곁으로 내려왔다. 아무리 쫓아버리려고 애를 써도 들오리는 날아가질 않았다. 결국 집오리들의 천대를 받으면서도 들오리는 항상 집오리들을 좇아 다녔다.

생각다 못해 들오리를 따로 격리시켜 기르기 시작했다. 차츰 들오리는 혼자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뒷강으로 가서 다른 들오리들과 섞여 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저녁때가 되면 들오리는 꼭 목장 안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모이도 먹고 잠도 자곤 했다.

들오리는 아이들과 아주 친해졌다. 아침 나절에는 아이들이 노는 곁에서 같이 있고, 점심 때가 지나면 뒷강으로 가서 다른 오리들과 섞여서 놀고, 저녁 때면 반드시 돌아왔다. 누가 곁에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으며 손바닥에 모이를 주어도 그것을 쪼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들이 모르는 틈에 포수가 이 섬으로 건너왔다. 뒷강 쪽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아이들은 모두 그 오리를 걱정하며 달려갔다.

200여 명의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뛰어갔을 때 우리들의 오리는, 그 또렷하던 우리들의 오리는 이미 피를 흘리며 모래사장에 뒹굴고 있었다. 축 늘어진 한쪽 날개는 우리들이, 아니 황 목사님이, 그 사모님이 정성껏 치료해 주신 털 빠진 날개를 늘어뜨린 채 이미 눈은 감겨 있고 가슴을 할딱거리며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작은 아이들은 낯선 포수의 발 아래 매달리며 들오리를 살려내라고 울부짖었다. 영문을 모르는 포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가려 했다. 우리들 가운데 큰 아이들은 포수를 둘러싸고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여기가 수렵 금지 구역임을 몰랐느냐고 따졌다. 그때 황 목사님께서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셨다. 들오리의 내역을 전해들은 포수는 사과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황 목사님은 죽은 들오리를 목장 뒤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으로 그 동화를 써서 <새벗>에 실었다. 아이들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불쌍한 오리에 대해 며칠이고 되풀이해 이야기하며 아쉬워했다.

‘생일없는 소년’

“우리들 친구 중에 오복규란 아이가 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계가 고장이 나서 어떻게 하면 고칠 수가 있을까 하고 늘 걱정했다.

하루는 우연히 고장난 시계를 차고 있는 그를 보게 된 황 목사님께서는 ‘자네 시계는 하루에 두 번만은 일 초도 안 틀리겠군’하시며 웃으셨다. 그리고는 그를 데리고 서울로 나가셨다. 황 목사님은 기독교 방송국에서 어린이 시간에 동화를 해주고 계셨는데, 그날 방송국에서 받은 사례금 7백 원을 모조리 주시며, ‘자, 이 돈으로 시계를 고치시오’하시며 한쪽 눈을 찡긋 하시더란다. 그때의 오복규 군이 지금은 40대의 장년이 되었는데, 그 보답도 하기 전에 세상을 뜨셨다고 매우 슬퍼하고 있다.

아무튼 황 목사님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상하셨고 고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신경과 정열을 들여서 돌봐주신 분이었다.

고아들에겐 대부분 생일이 없다. ‘생일 없는 소년’이란 소설과 같이 생일이 없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황 목사님은 새로 난지도 소년촌에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생일을 묻고, 생일 없는 아이들에게는 소년촌에 들어온 바로 그 날을 생일로 만들어주셨다. ‘오늘 새로운 한 사람으로서 자네는 태어나는 거야. 과거를 잊어버린 아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단 말야’하시면서 원아 기록부에 등록을 해주셨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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