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손님의 성 노리개로까지 전락하는 파키스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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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갇힌 파키스탄 여성의 한 가닥 희망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높은 문맹률을 보인다. 파키스탄은 지금도 문맹의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을 중시한다면, 여성을 교육하는 것이 이슬람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하여 가장 시급하고 효과적인 일이다. 교육이 없다면, 여성의 미래도 없다.

파키스탄 여성이 자주 찾는 곳은 병원이 아니고 여성의 출입을 막는 이슬람 사원도 아니라, 조상이 묻혀있는 무덤이나 개인 수도원이다. 그곳에서 여성은 가정과 병원 또는 사원에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짖을 수 있다. 여성만 모이는 곳에서 삶의 여러 문제를 자기 방식대로 표출할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외부와 철저하게 고립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처지의 여성만 모여 있는 분위기 속에서 동질감과 위로, 그리고 집단심리 치료를 경험한다. 그러나 거기서도 여성은 감시받기에 부자유하다.

무슬림 남성에게 여성이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성과 출산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용납되는 것은 가정과 집안에서만이다. 남성은 밖에서 활동하는 경제적 에이전트이고, 여성은 집안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가정의 에이전트라고 완전히 구별된다. 

모로코 출신으로 세계적인 인기도서 작가로 성공한 파띠마 메르니시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물으면서 이슬람의 역사에서 여성이 지도자로 활동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아직도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생지옥이다.

무함마드의 24명의 아내 중 아이샤는 낙타의 전쟁이라는 전쟁을 이끌었다. 즉 그 당시 두 분파로 갈리게 한 두 칼리프, 알리와 우스만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여성으로 지목된다. 그때 ‘뉴스즈’라는 개념이 생겨났지만, 오히려 아이샤의 이러한 참여가 이슬람 역사를 피의 역사로 이끌었다고 비난받는다. 베일을 벗고 여성도 교육받고,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사회와 가정을 위하여 그리고 국가를 위하여 함께 공동 전선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현재의 체제에 대한 반항이며, 또한 ‘뉴스즈’인 절망의 현실에 눈물조차 말랐다.

대부분의 파키스탄 여성은 평생 집안에서 보내는데, 손님이 오면 ‘빠르다’(내실)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남편의 허락하에 외간 남성의 성 노리개로까지 전락한다. 여성은 12세가 되면 ‘도빠다’라는 얼굴 가리개 천을 쓰기 시작하며, 성인 여성은 ‘부루카’라고 하는 온몸을 가리는 검은 옷을 입고 눈만 내놓고 다닌다. 아직도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직접 시장을 보러 나오는 남성이 많다. 여성은 외출할 때 오빠, 남동생, 삼촌 등과 동행하다 보니 근친상간이 많다. 자연히 파키스탄 여인은 의존적이며 독립적이지 못하다. 여성은 교사, 간호사, 은행원 정도이며 남성을 상대하는 직종은 없고, 아이 낳는 기계에 불과하다.

파키스탄 여성은 자녀를 많이 낳고 집안에 갇혀 취사, 세탁, 육아로 식모처럼 일하다 보면, 자기 발전을 위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아직도 여성이 말린 소똥이나 나뭇조각을 땔감으로 사용해 전통 음식인 ‘로띠’(밀가루로 만든 전병)와 ‘스브지’(채소로 만든 반찬)를 만든다. 온 식구가 먹는 저녁 한 끼를 준비하는 데 2~3시간을 소비한다. 한 가닥 희망으로 유일하게 친척 결혼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뱅글’이라고 하는 여러 쌍의 팔찌와 메헨디로 손바닥을 치장하고 가장 화려한 옷을 입으며 사진에서 본 화려한 여성의 삶을 꿈꾼다.

소기천 박사

<전 장신대 교수,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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