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너도 나와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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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외적으로는 평화스럽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여러 유형의 갈등이 심각하다. 그런 갈등을 생각하면서 공존의 길을 모색해 본다. 

정치적인 시각에서 보면, 어느 나라 국민이나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라 정당이 형성된다. 그렇게 모인 정당원들이 나만 옳고 상대방 정당원들의 주장은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정쟁으로만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상식과 이성이 있다. 순리적 사고를 배척하고 내 주장만 계속한다면 그것은 공존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 주장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가를 되돌아보며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럴 때 말이 통하는 공존의 길을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 세계 누구나 부자로 잘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노력은 적게 하고 소득을 더 많이 얻고자 무리하게 과욕(過慾)을 부린다면 분쟁이 끊이지를 않을 것이다. 특히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노린다면 이웃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와 인류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끼칠 것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도전하고 개척해 부자가 되고 사회에 기여까지 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고, 분쟁이 격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중요한 원인은 빈부격차가 심할수록 갈등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희년(禧年, Jubilee)을 계기로 50년마다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칼 마르크스(K. H. Marx)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투쟁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헤겔(G. W. F. Hegel)은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을 통해서 합리적 해결을 주장하였다. 이런 빈부격차 분쟁문제는 오늘날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진영논리로 이어져 끝없이 분쟁을 거듭해 오고 있다. 이 문제는 자기 희생정신 없이는 절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다. 한 알의 밀알이 죽고 썩음으로  다시 살 수 있는 진리를 실천할 때 공존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시각에서 보면, 인류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문화 속에서 공존해 오고 있다. 그런데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가 두터워질수록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인류사회는 종교문화의 이질화 때문에 수없이 분쟁을 계속해 오고 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도 영토 연고 문제뿐만 아니라 민족과 종교 문제가 내재 되어 있다. 또한 인류는 인종 문제 때문에 수없이 분쟁해 오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총기사건도 백인과 흑인의 인종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통시적 시각에서 보면, 인류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 전쟁에까지 이르는 대부분 원인에는 과욕과 패권주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제1‧2차 세계대전도 식민지를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과욕과 추축국들의 패권주의에서 비롯됐다. 

공존의식을 특별히 강조한 지도자의 예를 든다면, 일제 강점기 승동교회 김영구 목사의 아들로 목회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세상에서 헤매다가 돌아온 탕자의 마음으로 목회자가 되어 한국의 어거스틴이라고 불리며, 책 ‘사랑의 천국방언’을 출판한 영세교회 개척자 김종수 목사가 있다. 그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회개하는 강도를 향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를 상기하면서, ‘너도 나와 같이 살자’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나도 살고 너도 살게 해야 한다’(live and let live). 나만 살고 너는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공멸의 길이다. 우리는 모든 장벽을 넘어 공존‧공영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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