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이승만, 미국을 모델로 한 근대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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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의 저서「독립정신」집필 배경

언더우드 2세인 원한경 선교사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한국으로 왔다. 1942년 6월 미국과 전쟁을 벌이던 일본의 강제로 한국 땅을 떠날 수밖에 없던 그는 해방이 되자 미군정장관 고문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1949년 3월 그의 부인 와그너 여사를 공산당 간첩의 흉탄에 잃고 나서 심장병을 얻어 미국으로 갔지만 소련의 괴뢰 김일성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한국에 왔다. 그 비행기 안에서 미국이 한국을 도우라고 호소하기 위해서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고난을 이겨낸 비전의 나라 한국 Tragedy and Faith in Korea」이다.

이 책에서 언더우드 2세는 한국전은 한국 역사의 가장 중대한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한다. 13세기 몽골의 고려 침공, 1592년 일본의 임진왜란, 1636년 중국의 병자호란, 1904-5년 러일전쟁의 전쟁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실제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계기가 바로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계기로 인천항에 해군을 주둔시키게 되면서, 그 후 40년 동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하는 시대를 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당시 한성감옥에 정치범으로 갇혀 있었던 이승만은 「영한자전」 집필을 중단하고 20대 청년으로 놀라운 명저 「독립정신」을 집필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 전쟁의 승자에 의해 식민지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나라의 근간이 되는 대중을 일깨우기 위해서 「독립정신」을 집필한 것이었다.

2. 근대화 모델로 이승만이 미국을 택한 두 가지 이유

조선말과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이후까지 네 개의 근대화 노선이 있었다. 친중 근대화, 친일 근대화, 친소 근대화 그리고 친미 근대화이다. 각각 순서대로 중국, 일본, 소련, 일본과 친하게 지내면서 근대화하겠다는 노선이었다.

이승만은 이 책 「독립정신」에서 미국을 모델로 우리나라가 개화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앞의 네 개 근대화 노선의 네 나라를 이승만은 모두 언급하고 있다. 네 나라 중 중국, 일본, 러시아가 한 묶음이다. 다 우리나라 주변에 위치해 있다. 중국은 이미 쇠했고, 일본과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은 멀리 떨어져 우리나라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둘째, 미국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의 개화 모델이라고 말한다. 언더우드 2세가 정리한 고조선 이후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조선-일제시대-해방과 미군정의 과도기-대한민국으로 전개되는 우리 자유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결정적 획기는 바로 대한민국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을 모델로 하는 국민주권의 민주주의 국가가 비로소 이때 탄생했던 것이다.

류금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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