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삼손 신드롬(4) – 진실한 사과” < 본문: 사사기 16: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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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사는 지인이 있습니다. 딸은 하버드를 아들은 버클리를 다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였지만 사실 아들은 부모의 강요로 인해 들어간 학교라 그런지 적응을 못하고, 학업 성적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했고, 육체적인 병도 얻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은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엄마 때문에 네가 고생을 하는구나. 미안하다. 이 엄마를 용서해주렴.”이라고 말하며 울었습니다. 온 가족이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 후 아들은 자기의 적성을 살려 학교를 졸업하고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사과는 자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구분된 삶을 살아야 했던 삼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기대하게 했던 그 삼손은 이제 블레셋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재주 부리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눈은 뽑힌 채, 놋줄에 매여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고, 다곤 신전에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은 흡사 사람이 아닌 동물의 모습입니다. 젊은 사자를 죽이고,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었고,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였던 그의 모습은 이제 그 동물들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동물과 같은 비참하고 처절한 상황에 빠집니다.
다곤 신전의 두 기둥에 기댄 삼손은 여호와께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 물을 달라는 외침(15:18)을 제외하면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삼손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그 능력이 그의 긴 머리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의 입에서 “주 여호와”라는 말을 이 마지막 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삼손은 이전에 한 번도 하나님을 찾지도,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힘의 근원은 긴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실인의 규정은 지키지 않아도 머리에 관한 규정만은 지키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의 기도는 죽음을 염두에 둔 절실한 간구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삼손의 이 기도는 개인적인 복수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해야 할 사명을 죽음 직전에 담당하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삼손은 하나님 앞에 여러 말로 회개하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단 1분이었고, 아주 짧은 말이었습니다. 삼손에게 있어서는 진실한 회개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 중에 삼손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그가 들어갔을까요? 삼손은 자신의 욕심과 탐욕으로 고통과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짧은 순간 진실한 회개를 통해 고난 속의 십자가를 받아들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저자인 켄 블랜차드는 『진실한 사과는 우리를 춤추게 한다』에서 ‘사과’의 중요성과 실천방안을 알려줍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데, 그때 해야 할 것은 단 1분이라도 사과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요령 10가지” 중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과하는 것입니다.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직접 마주 본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며 진심이 오해되지 않고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과가 바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실한 회개인 것입니다.
“네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원인을 규정하면서 싸우는 것은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따지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황하여 중심을 흐리거나,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가 아닌 짧아도 진심과 진실이 담긴 사과가 필요합니다. 그런 ‘단 1분의 진실한 사과’가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사과하기 쑥스럽고 어색한 관계, 사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으로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부터 진실한 사과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한 관계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진실한 사과가 이뤄지기를 축원합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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