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십자가의 사랑<빌 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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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25일은 실종 아동의 날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20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은 663명입니다. 2019년 이영애 주연의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는 실종된 자식을 찾기 위한 엄마의 처절한 사투를 보여줍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는 나날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전국을 돌며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아들을 봤다는 제보를 받고 수상한 바닷가에 도착한 엄마는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경찰 홍경장을 만나고 이상함을 느낍니다. 마을 사람들도 엄마를 경계합니다. 엄마는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직감하고 아이를 찾기 위해 추적을 시작합니다. 마침내 아이를 찾았는데 아이는 쇠줄에 묶여 있고 폭행으로 귀를 다쳐 잘 듣지를 못합니다. 실종 아동이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을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참고 끝까지 아들을 찾아냅니다.

오늘 본문에도 잃어버린 자녀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인간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는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즉 예수님의 신성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라고 할 때 이 ‘본체’라는 헬라어는 ‘모르페(μορφ)’입니다. 이 말은 사물의 본질적인 것을 말하며 절대로 변하지 않는 형상을 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할 때 이 ‘모양’이라는 헬라어는 ‘스케마(σχμα)’입니다. 이 말은 시간의 경과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형상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시간의 경과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이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인간들을 구원하시기를 계획하셨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경험한 것이기에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예수님의 심정을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모습에서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셔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시면서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을까요? 십자가의 고통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고통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부터 채찍질을 당하는데, 채찍 끝에 작은 뼛조각이나 뾰족한 전갈 모양의 쇳덩이가 36개나 달린 채찍으로 내리치기 때문에 채찍질을 당할 때마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피가 솟구치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렇게 채찍에 맞으면 등이 밭이랑처럼 갈라지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상태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형장을 향해서 가야 합니다. 작열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볕으로 온몸은 탈진되어 쓰러집니다. 그러면 가차 없이 채찍질합니다. 뜨거운 햇볕으로 목마름과 갈증에 시달립니다. 숨은 턱까지 거칠게 차오르고 중도에 쓰러져 다른 사람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덕 위에 도착해서 십자가 형틀에 눕혀지고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고 가시면류관이 씌여지고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그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심장까지 관통하여 모든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셔야 했습니까? 잃어버린 자녀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에게 미혹되어 죄를 짓고, 죄의 종이 되어 영원한 꺼지지 않는 지옥으로 던져져야 할 인간을 다시 찾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시 찾아서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 딸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찾고 또 찾으십니다. 십자가는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지금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이범진 목사

<하늘기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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