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예수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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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요즘 정치판에서 핫이슈가 되고 있는 “아빠찬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나와 말 상대가 되었던 사람은 갑자기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서 얼굴이 벌건채로 공정치 못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의 대표적인 양상이 바로 아빠찬스라며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좀 높은 사람들 중에 아빠찬스를 써먹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고 개탄하는 말을 했다. 그와의 대화는 교회의 문제로까지 비약되었다. 

어느 교회의 중책을 맡고있는 장로이기도 한 그는 요즘 크리스천들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종교적 바리새인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신앙행태를 보면 주님이 빨리 오셔서 심판해야 한다고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매우 힘이 있었다. 내가 그와의 시선을 피해 먼산을 바라보며 지나는 말투로 말을 툭 던졌다. “나도 아빠찬스를 쓰는데 나도 내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할 때가 많은데…” 나의 말 끝에 그의 안색이 변하며 “지금 당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라는 질책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갑자기 경색된 분위기를 깰 요량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후에 나는 내 힘으로 되는게 없다는 걸 알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등을 비비며 살아왔으니까. 항상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기회(찬스)들을 적절히 이용해 왔다”고 말하자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빠찬스는 아빠가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고 현재 살아있는 아빠로서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자녀에게 적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아빠찬스의 적용이 원칙과 본질에서 벗어난 적법치 않는 것이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차후 문제이다. 우선적으로 아빠찬스는 아빠가 있는 사람에게만 그리고 그 아빠가 능력이 있는 아빠일 때만 적용되는 것이니까.

나는 교회장로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삶 속으로 끌어들여 나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 아버지의 힘을 아주 적절히 이용하여 내 앞에 전개된 문제들을 해결해 오고 있는데 마치 알라딘의 마법램프처럼 하나님이 필요할 때만 호출하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신앙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행복을 위해 예수를 이용한다는 표현이 듣기 거북한가? 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예수를 우리 삶에 끌어들여 사용할 생각을 안하는 걸까?

아비는 자식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빠찬스를 쓰든 또한 자신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짓밟고 지나가도 기뻐할 것이다.

예수를 이용하자. 우리 삶 속에서 예수가 그 필요를 채워주시도록 항상 의지하고 이용하자.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다. 주님은 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우리가 이 다리를 밟고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의 부활로 옮겨 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십자가다. 나를 위해 예수를 이용한다는 표현이 거북하거든 예수를 사용한다로 바꾸자.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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