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장로님이 손으로 쓴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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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懸垂)는 ‘아래로 매달려 드리워짐’이란 뜻이다. 요즘 교회에서 사용하는 현수막은 거의 대부분 전문 업체에 주문해 사용한다. 하지만 30여년 전만 해도 교회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외부에 거는 현수막은 몰라도 예배당 내 강대상에 거는 현수막 제작에는 인색했다. 손으로 직접 써서 강대상의 휘장이나 벽에 붙였던 기억이 있다. 아마 전문 업체가 그리 많지 않던 시대였고, 또한 예산이 부족한 교회 입장에서는 비용의 문제 때문에 그리했을 것이다. 이런 관례가 계속 이어져 안동교회는 2000년대 초까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으로 직접 써서 붙이는 것으로 현수막을 대신했다. 안동교회에서는 김삼홍 장로님이 이 일을 도맡아 봉사했다. 

그런데 김 장로님의 조부, 부친 역시 교회에 헌신했을 뿐 아니라 민족의식이 강한 분들이었다. 그의 조부 김익현 장로님은 초기 안동의 기독교계의 유명한 조사요 전도자였다. 안동 3.1만세 운동의 주역으로 옥고를 치렀고, 일제 말엽 신사참배를 반대한 선명한 믿음을 가진 분이었다. 김삼홍 장로님의 선친 김희년 집사님은 일제시대 때 기독서점인 삼신사를 운영하면서 성경과 기독교 서적뿐 아니라 당시 민족주의 정신이 강한〈새벗〉등의 서적을 판매했으며, 어린이들에게 나라사랑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경찰의 요시찰 인물이 되었고, 해방이 되기 전까지 경찰서에 자주 불려갔다. 

이분들의 후손인 김삼홍 장로님은 손수 쓴 현수막의 대가(大家)였다. 그렇다고 김 장로님이 미술대학을 졸업한 것은 아니다. 그는 중등학교 교사로 평생 과학 과목을 가르치다가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했다. 김 장로님은 오늘날처럼 현수막에 사용되는 긴 헝겊에 직접 글자를 쓰거나 도안을 그린 것은 아니다. 색도화지나 캔트전지에 매직으로 다양한 필체로 행사에 맞는 글자체를 선정해 쓰고, 그것을 가위로 오려 압핀을 사용해 강대상 휘장에 붙이면 지금의 현수막이 되었다. 헌신예배, 찬양경연대회, 성경퀴즈대회, 경안어린이대회, 부흥사경회 등에 사용된 다양한 글씨체는 묘하게 여러 집회와 행사의 성격에 너무도 잘 맞아 보는 이로 하여금 은혜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여러 사역들을 진행한다. 매년 반복적으로 시행하는 헌신예배나 행사의 경우 날짜를 명기하지 않고 보관했다가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연히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일 전날이나 당일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 현수막이 없을 때 당혹감은 매우 크다. 또한 현수막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경우도 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너무 늦어 현수막 없이 행사를 진행할 때도 있다. 

돌아보면 아무리 급하게 부탁을 해도 김 장로님은 짜증내시거나 오래 기다리게 한 적도 없었다. 부탁을 받으면 집에서나 교회에 나와 신속하게 써서 현수막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 김 장로님은 2017년 1월 8일, 7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안동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교회가 꼭 필요로 하는 일에 말없이 헌신하셨던 김 장로님이 현수막을 제작할 일이 많은 요즘 자주 생각이 난다.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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