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회 부흥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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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몇 년 전만 해도 1천만 성도라고 했다. 지금은 800만 또는 600만이라고까지 한다.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은 기독교 2천 년 역사에 보기 드문 기적 같은 일로 평가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요인과 배경이 있을 것이다. 산업화가 되면서 농어촌의 많은 인구가 도시와 산업 현장으로 유입되면서 객지 생활이 힘들고 외롭다 보니까 정신적 안식처로 교회를 찾았다. 경제적 가난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마음의 평안을 구하게 된다. 힘들고 가난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구하며 교회를 찾는다. 

교회 부흥의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교회가 사회적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이다. 로마 제국이 붕괴되고 있을 무렵 교회는 특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염병이 닥쳐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다. 그러나 교회는 피하여 떠나지 않고 남아서 환자들을 보살폈다. 예수님의 참 사랑이었다. 자발적인 사랑이었다. 로마 제국이 잔인한 산아제한 정책을 펼 때 수많은 유아들이 길가에 버려졌다. 교회는 이 유아들을 거두어 양육했다. 오늘날에도 노숙자들, 삶이 고달파 고통받는 사람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 이웃의 약자들과 빈민들에게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구제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 어두운 그늘에 빛을 비추고 부패한 곳에 뿌려지는 소금이다. 로마제국 초기에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맹수들에게 던져졌다. 그리스도인들을 십자가에 매달았다. 그러나 이 작아 보이고 보잘 것 없는 십자가는 로마 제국의 박해를 이기게 해주었다. 복음은 유럽 대륙의 구석까지 전파되었다. 미국 건국 정신의 뿌리가 되었다.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대로 행동했다. 주류 문화에 대항해서 노예 해방운동을 일으키고 자유를 안겨 주었다. 여성의 지위를 높였다. 

15세기 유럽 전역을 페스트가 휩쓸어 인구의 1/3이 죽어갈 때 그리스도인들은 피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하고 환자들을 간호해 주었다. 낙태나 영아(兒) 살해에 가담하지 않고 반대했다. 박해를 받으면 테러로 대항하지 않고 순교했다. 로마 제국이 붕괴되어 사회 안전망이 해체되었을 때 교회가 나섰다. 이교도들까지 한 식구로 대했다. 주님께서도 가난과 압제를 받는 소수 민족으로 사셨다. 언제나 힘없고 가난하고, 압제받고 병든 자의 편이셨다. 사형시키는 나무 십자가에서 복음과 능력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켰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국민 교육과 계몽, 애국운동을 교회가 선도했다. 병든 자를 위한 치료에 앞장섰다. 나라를 위한 기도에 열정이 있었다. 독립운동의 주도를 교회가 감당했다. 1960~198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소외계층의 삶과 권익을 보살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교회 울타리 안으로만 들어가는 모습이다. 자기 교회에만 관심이 깊다. 지도자들은 개인의 명예와 생활의 편의, 외모 가꾸기와 정치적 지위 향상에 관심이 많다. 교회 안에 드리운 허위와 권위와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 주님께서 기름 부으시고, 지각을 주시고, 분명한 말씀과 권위를 주시기를 간구해야 할 시간이다. 바울 사도가 의와 절제와 심판을 강론할 때 벨릭스는 두려워 떨었다. 그와 같은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의 권위가 회복되고 부흥하려면 먼저 회개와 기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복음은 세속문화 속에서 누룩이 되어야 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오직 자라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교회 안에서 깊이 묵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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