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 일본의 개(犬)가 되다… 그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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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두 사람은 문학 선후배 사제지간으로 많은 만남을 통해, 모윤숙은 춘원을 존경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 존경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틋한 사랑으로 옮겨지는 것을 느끼고, 그녀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러면서 한편 모윤숙이 섭섭한 것은 춘원 선생이 자기를 대할 때마다 보여주는 가부장적인 태도가 늘 마음을 서운하게 했다. 마치 자기를 딸처럼, 막내 조카처럼 너무나 어리게 대하기 일쑤였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 주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는 이런 소문들이 떠돌아 다녔다. “춘원과 모윤숙은 연인 사이라고…”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있긴 했다. 이럴 때마다 각각 두 사람은 펄쩍 뛰기는커녕, 빙그레 미소만 지으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는 것은 그 때나 그 후에나 늘 마찬가지였다. 왜냐면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슬프고도 아픈 사랑의 이야기 같은 것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때는 1930년 초, 모윤숙은 시(詩)로 문단에 데뷔했다. ‘피로 새긴 당신의 얼굴’ ‘동광’ ‘추억’ ‘삼천리’ 등으로 출발해서 3년 후, ‘빛나는 지역’의 첫 시집을 출간했다. 이 때 춘원이 서문을 쓰고 김활란이 발문을 썼다. 이렇게 춘원과 모윤숙은 문학을 통해 알게 되었고 만나면 17살의 나이 차이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처음에는 어려운 사제지간처럼 지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면서 누가 먼저라 말하기 어렵지만,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 날도 춘원은 밤늦게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곁에는 모윤숙이 집에 가지 않고 조수처럼 춘원의 원고 등 잡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건넌방에서 일하는 모윤숙을 지긋이 바라보던 춘원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윤숙이! 밤이 많이 늦었어. 이제 그만, 가야지 집에.” “……” 잘못 들었는지 윤숙은 대답이 없다. 

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건넌방으로 가서 제자를 바라보며 재차 말한다. “집에 안갈 꺼야? 밤이 늦었는데….” “가야죠. 갈꺼야요. 조금 있다가….” 스승 춘원을 바라보는 윤숙의 까만 눈동자가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 후부터 윤숙의 마음은 늘 슬펐고 외로웠다. 스승 춘원과 함께 있으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 그리운 스승 춘원. 나 어쩌면 좋아. 누구의 소개로 첫 시집 출간할 때, 서문을 받으러 간 날 밤을, 윤숙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춘원을 처음 봤을 때, 윤숙은 그만 첫 만남에서 자신의 시선을 어디에다 둘 수 없었다. 춘원 선생이 그만 남자로 너무나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전신이 쭈빗 굳어지며 심장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조끼를 받쳐 입은 옷맵시가 어쩌면 그렇게 도도한 멋으로 보였을까. 자신을 바라보며 가끔씩 웃어줄 때 드러나는 고른 하얀 치아가 윤숙의 어린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한계선상에서, 그저 한숨으로 그리워하며 밤을 지낼 수밖에. 이것이 짝사랑인 것을… 내 혼자만의 사랑인 것을… 혼자 체념하면서 그녀는 홀로 그리워했다. 모윤숙은 이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눌러 죽이면서 일기장에다 솟아오르는 자신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기 시작했다.

“소쩍새는 밤마다 피울음을 운다고 한다. 이미 아내가 있는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을 날마다 나의 일기장에 쓰면서 밤마다 건널 수 없는 강을 바라보면서 나는 울고 있다.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움, 슬픔, 외로움, 아픔의 말을 다 모아 나는 나의 일기장에 적어 본다.”

북아메리카의 깊은 숲속에서 혼자 우는 ‘렌’이라는 새를 윤숙은 자기 이름으로 정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의 옛 이름 ‘시몬’을 윤숙이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으로 정하고 이 일기장을 오늘 밤도 나는 쓴다고 했다. 매일 매일 윤숙은 주체없이 들고 일어나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자신의 노트에 일기장처럼 쓰고 또 썼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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