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한결 김윤경 스승 가르침 날로 더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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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문법과 국어학사를 연세 강단에서 가르쳐 주신 한결 김윤경 스승은 인격과 성품도 한결같이 온유 겸손하셨다. 연세대 총장 백낙준 박사가 미국 가실 때와 문교부 장관으로 취임하실 때 연세대 총장 서리를 맡겨 드렸다. 교수가 행정을 맡으면 공부를 할 수 없거니와 스스로 행정 능력이 없다고 김윤경 교수는 총장서리를 거절하셨다. 그래도 백낙준 박사는 김윤경 교수에게 두 번이나 연세대 총장 서리직을 맡겨 드렸다. 

1913년도 남대문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가 세운 중학과정인 청산학원에 재학 때 한힌샘 주시경 스승의 제자가 되셨다. 연동교회 초대목사 게일 선교사가 강의 중에 “조선에 하나님이 세종대왕을 주시어 가장 쉬 익히고 배울 한글을 주셨는데 너희 조선사람들이 어려운 한문을 즐기는 것을 나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자극 받아 김윤경 교수는 평생 한글을 연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원래 수학을 좋아해 수학선생을 하려했다. 그러나 마산 창신학교에 가서는 국어 선생과 수학선생을 겸해 수업했다. 연희전문학교를 진학할 때도 이과를 제치고 문과로 입학해 국어학을 전공했다. 배화여고 국어선생으로 부임해 모범교사로 평가받아 학교 장학금으로 일본에 유학했다. 릿쿄(立敎)대학교에 언어학과가 없어 사학과로 입학하고 졸업논문은 ‘조선문자급 어학사’를 썼다.

귀국 후 이 논문은 애산 이인 선생 아버지 회갑 축하금을 출판비로 해 한 권의 저서로 냈다. 한국 국어학사 저서로는 으뜸가는 보배책이다. 그 원본이 홍릉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배화여고 재직시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함흥감옥 7년 옥고를 치루셨다. 도산 안창호선생을 존경하여 흥사단에 입단한 김윤경 교수는 흥사단 사건에 연루되어 조선어학회 사건보다 먼저 옥고를 치루셨다. 김윤경 교수는 이 두 일제시대 사건으로 9년간 무직으로 생계가 곤란했다고 했다. 광복후 연세 모교 교수로 부임해 연세 오석두(五石頭) 교수의 하나로 휴강 없이 원리원칙을 지켜 성실하게 강의하셨다. 연세춘추 대학신문을 보고 빨갛게 교정을 본 후 연세춘추사로 보냈다. 강의실에서 김윤경 교수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마태복음 5장 48절 말씀으로 학생들의 인격을 닦아주셨다. 4·19후 정년퇴임 하시고 광주 고향에 가서 흙이나 파려 했는데, 한양대 숙명여대에서 출강을 부탁해 다시 대학에 나가신다고 했다. 한양대에서는 문리과 대학 학장을 맡겨 드렸다. 

한양대 학장실 가는 107계단 오르는 일이 하루 중 제일 힘들었다고 하셨다. 한양대 교수들과 부산 울산공업단지 사찰단에 동행 중에 경부선 열차에서 발병해 부산에서 돌아가셨다. 고인을 연세대 앞 창천동 집으로 모셨다. 1969년 2월 초, 사회장으로 남한산성 건너 산에 산소를 마련해 드렸다. 나라 겨레 한글사랑, 도산정신 사랑의 김윤경 스승 뒤를 나도 열심히 따라 걷고 있다. 날로 더욱 그립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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