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처지가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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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호는 흰 국화 한 송이를 들고 고인의 사진 앞에서 잠시 머리를 숙여 묵념을 했다. 항상 장례식 때마다 느끼는 마음이지만 사유야 어찌됐든 슬픔으로 울렁대는 가슴은 다름이 없다. 지난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한 대학에서 교편 잡던 교수들이 모이는 친목회에서 만났던 홍승규의 아내가 오늘은 병풍 뒤 관 속에 누워있는 것이다.

순호는 싸해오는 가슴을 억누르며 기둥 같은 승규의 두 아들 앞으로 걸어갔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무슨 말을 해야하겠다면서도 번번이 한마디도 못하고 말던 그대로 머리만 숙였다가 조심스럽게 물러 나왔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그동안 아프다는 말이 없었지 않아?” “아니야. 10여 년 전부터 간경화로 고생을 해왔었지.” 간경화로 10여 년을 지나왔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기적이 아닐 수가 없는 일이다. “의사들도 놀랬지. 간경화를 이렇게도 오랫동안 버티어 냈다는데 대해서….”

승규는 선험자처럼 슬픔 기색보다는 인생이란 다 그런거지 하는 식으로 덤덤하게 말대꾸를 했다. “난 어젯밤 늦게서야 내 매부 차 교수에게서 연락을 받고 알았지. 좀 일찍 연락을 주지 오늘이 발인이라면서….” “아니야, 사실은 차 교수에게도 연락하지 않으려고 했지.” 그러고서는 눈길을 천장으로 옮겼다.

“차 교수도 내 처지와 같은걸….” 승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술이 실룩거렸다. 그러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연락은 해야지….” 순호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슬퍼하지는 않으리라던 가슴이 맥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여름. 한 번 쓰러졌던 여동생이었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교회생활을 하던 그가 그렇게 갑자기 전혀 생각지 못했던 죽음으로 이 세상을 달리한 것이다. 이래서 승규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차 교수에게 차마 상을 당했다고 일러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지 않았으면 했었지….” 

승규 아내의 죽음에다가 저세상 사람이 되고만 여동생 생각이 겹치자 순호도 더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울지 말라니까 이 사람아! 자네가 낙심하면 애들은 어떡하나? 내 말 알겠지?” “응 알아 고마워.” 눈물은 하는 말과는 상관없이 계속 넘쳐 내렸다. “여봐 마음을 다부지게 가지라구!” 

순호는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훈장의 버릇으로 승규의 등을 토닥거렸다. “이젠 아들 며느리하고 지내야지.” “그래야지…. 그것도 차 교수와 똑같은 처지라구….” “아니 그렇다면?” 순호는 움찔했다. 처지가 같다면 아들이 아직 결혼을 안했다는 얘기다. ‘괜스레 그런 말을 했군. 아무 말도 말 것을….’ 이미 후회는 때가 늦었다.

승규는 다시금 물먹은 닭처럼 천장을 올려다보고 울고 있는게 아닌가. 순호는 말없이 대학병원을 나섰다. 죽음이라는게 무언지 생전 울 것 같지 않던 명랑한 눈에서 비오듯 눈물이 흐르고 있으니…. 어째서 인간은 생에 대한 가장 강한 애착에서 이렇게도 바라지 않는 죽음이라는 최대의 비극을 겪으며 울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래서 사람은 누구나가 조물주에 대한 신앙심을 지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리라. 갑작스레 앞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운전기사가 정신차리라고 손짓을 하면서 지나갔다. ‘그래야지 정신을 차려야지 그래야만 남들을 울리지 않겠지.’ 내리막길 아스팔트 위에 어느 나뭇가지에서 떨어졌는지 벌레에 먹힌 잎이 바람에 밀려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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