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오빠생각”과 “뜸부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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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지긋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불렀던 동요, “오빠생각”을 기억할 것이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게 하는 그런 노래인데 노래 가사처럼 오빠가 서울 가면서 “나중에 비단 구두를 사다주마” 하고 약속했지만 뜸북새가 우는 봄과 뻐꾹새 우는 여름이 다 지나고 기러기와 귀뚜라미 우는 가을이 되어도 소식조차 없기에 나뭇잎 떨어지는 마을 언덕에서 오빠를 기다리는 어린 여동생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오빠생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25년 11월에 방정환 선생께서 발간하던 아동잡지 「어린이」에서 동시(童詩)를 모집했는데, 당시 12살 소녀이던 최순애 학생이 자신의 실화(實話)를 시로 옮긴 “오빠생각”으로 입선을 했고 이듬해 4월에는 16세 소년이던 이원수 학생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이란 동시로 입선(入選)이 되었다.

아동 잡지 「어린이」 에 실린 “오빠생각”을 보고 마산의 문학소년 이원수가 수원의 최순애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펜팔(pen-pal) 교제는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수원에 살던 소녀 최순애(1914~1998)와 마산의 소년 이원수(1911~1981)는 1936년 마침내 부부가 된다. 그러니까 “오빠생각”과 “고향의 봄”이 서로 결합되었던 것이다. 

한편, 최순애 동요작가의 따님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2남 2녀의 자녀를 기르며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느라 동요를 더 쓰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기독교 신앙생활에 몰두, 임종하시기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전한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예술인마을> 사람들은 이 동네에 살았던 한 노인을 “뜸부기 할머니”라고 불렀는데 그분이 바로 돌아오지 않은 오빠를 그리워하며 “오빠생각”을 썼던 작가 최순애 여사이다. 이웃에 살던 서정주(1915~2000) 시인이 “오빠생각”의 동요의 첫 구절을 따서 “뜸부기 할머니”라는 애칭을 붙여준 것인데 그것이 그 할머니의 별명이 된 것이다.

다음은 최순애 할머니의 회고담이다. “결국 오빠는 일경(日警)에 쫓겨 숨어 다니다 건강을 잃고 요절(夭折)하고 말았죠. 지금도 그 옛날의 수원 성곽의 성터와 오빠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라고 하던 할머니는 1998년 85세로 별세하였다. 

1925년은 일제가 강력한 문화정책을 펼치면서 우리 민족을 억압하던 시기여서 많은 청년들이 고향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만주나 간도 등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12살의 소녀 최순애는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성곽 바로 아랫동네에 살았는데, 날마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산등성으로 올라가서 서울하늘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녀보다 8살 위인 오빠 최영주(崔永柱, 본명 崔信福, 1906~1945)는 윤석중, 이원수, 서덕출과 함께 「기쁨」의 동인으로 활약하며 <그림자> <우산모자> <가을> <낙엽> <애기와 별> 등의 동시를 발표했는데 그가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써놓은 원고 보따리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의 작품은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고 한다. 최신복은 5년제 배재중학교를 거쳐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와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애국계몽운동을 벌였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 방정환, 마해송, 윤석중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 운동을 펴는가 하면 「개벽」, 「소년」 , 「어린이」 등의 잡지에 세계명작을 번안, 연재하는 일을 하면서 뛰어난 편집자로 이름을 날렸다. 

잡지에 실린 최순애의 동요 “오빠생각”을 보고 감명을 받은 25세의 청년 작곡가 박태준이 이 동요에 곡을 붙여 발표하면서 이 노래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속에까지 이 노래가 깊이 파고든 것은 나라 없는 설움과 가족을 빼앗긴 한이 맺혀있었기 때문이다. “오빠생각”은 “조국광복”의 이미지와 포개지면서 오빠에 대한 기다림은 최순애만의 기다림이 아니라, 이 나라의 광복을 갈망하는 온 국민의 기다림이었다. 이달에 우리는 광복절 78주년을 맞았다. ‘오빠’를 기다리던 최순애의 애절함이 새삼 우리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것만 같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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