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높은 문맹률, 파키스탄 발전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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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대접 최상으로 여기는 나라

무굴 제국 이후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아 온 파키스탄은 1930년대 시인 이크발에 의해 인도 대륙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였다. 힌두교도 없이 순수한 회교도만의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 건국 이념이었다. 1947년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회교도의 나라인 동서 파키스탄이 분립 독립했다. 파키스탄은 거룩한 땅(holy land)이라는 뜻이며 이는 회교도들이 사는 땅을 의미한다. 그 후 동서 파키스탄은 여러 국내외 사정으로 인해 1971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다시 분리되었다. 독립 이후 1958년 아유브 칸 장군의 쿠데타 등 몇 차례 정변이 있었지만, 현 정권은 1999년 10월 무혈 쿠데타로 입성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다.

한편 카슈미르 지역의 영토 분쟁으로 파키스탄과 인도는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로 지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양국은 핵무기 개발 등 과도한 군비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남한의 8배가 되는 79만6천95㎢의 넓은 영토에 아열대성 기후로 고온 건조하며 한여름에 내륙 지방은 영상 45도가 넘는다. 그동안 인구는 폭발적으로 팽창해 독립 당시 3천100만이던 것이 현재는 1억4천7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전인구의 62%가 문맹으로 집계될 만큼 낮은 교육 수준은 나라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4개 주가 있으며 주요 도시는 상업의 중심지이자 항구 도시인 카라치(1천100만), 교육과 문화 중심지인 라호르(545만), 공업 도시인 파이살라바드(214만), 수도인 이슬라마바드(64만) 등이다.

파키스탄의 경제는 아직 많이 낙후돼 있는 편이다. 전국민의 14%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중화학 공업은 발달되지 않고 있다. 대신 농산물 가공, 스포츠 용품 제조, 섬유 산업 등이 발달한 정도다. 정부는 현재 실업률을 10% 미만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실제로 30%가 훨씬 넘고 있다. 때문에 파키스탄의 젊은이들은 해외에 나가 일하기를 꿈꾸고 있다.

1950년대에 한국보다 발전된 나라였던 파키스탄이 낙후된 이유로는 높은 인구 성장률, 60%가 넘는 문맹률, 영농 기술의 후진성, 열악한 사회 간접 시설 그리고 근래 과도한 아프간 난민에 대한 경제적 부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경제적 부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늑장 처리와 계획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어려운 국민 의식 구조를 꼽을 수 있다.

모든 회교 국가에서 가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듯, 파키스탄의 생활과 문화를 알려면 먼저 그들의 가족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파키스탄은 전통적으로 대가족 제도로 대체로 3대가 같이 살고 있다. 결혼한 후에 분가도 하지만, 아들들은 부모와 한 집에서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안의 중대사는 웃어른에 의해 결정되며 여자의 개인 권리는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 간의 유대는 매우 끈끈하며 그들은 가족을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아시아 문화의 특징인 손님 대접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빚을 내어서라도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려고 한다. 손님은 식사, 잠자리 등 모든 면에서 최상의 대접을 받는다. 기독교인이란 것만 숨기면 누구나 대접받는 사회이다.

소기천 박사

<전 장신대 교수,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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