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마라, 의심하지 마라”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우리가 그 은혜를 느끼든 못 느끼든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 삶 속에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로 나타난다. 우리가 원하는 그 시간에 내려 주시는 은혜가 이른 비의 은혜다. 그러나 때로는 절망의 나락에서 한 줄기의 소망도 보이지 않을 때에 내려 주시는 은혜가 있다. 바로 늦은 비의 은혜다.
하나님은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큰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 주신다.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늦은 비로 우리에게 임하신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도 하신다.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눈물 흘리며 허덕이는 순간들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더 순수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해주신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이른 비의 은혜가 임하면 교만과 자만으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비의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순금 같은 믿음을 주신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그들의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 행사에는 꼭 ‘아니마밈’이란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이 노래의 제목인 ‘아니마밈’이라는 말은 ‘나는 믿는다’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600만 명의 유대인이 무참히 살해되었던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작사 작곡되어 죽음을 앞두고 위로를 받았던 그 노래이다.
내용은 이렇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하여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믿는다.” 이 간단한 가사를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 그런 찬송이다. 때때로 자신의 동료들이 가스실로 끌려 나가는 것을 본다. 죽음을 향해서 끌려가는 그 모습을 볼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들은 이 찬송 뒤에 한 절을 더 넣어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때때로 메시아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러나 한 외과의사는 절대로 그 마지막 가사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메시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단정히 행하고, 죽음을 앞둔 시간이지만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며 끝까지 소망을 가졌다. 마침내 그는 죽지 아니하고 수용소 문을 나오게 된다. 그는 마지막 절을 이렇게 고쳐 불렀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너무 서둘러서 믿음을 포기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그래서 믿음을 포기하는 자가 많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나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신다. 그것이 이른 비의 은혜일 수도 있고, 늦은 비의 은혜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