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볼아 본 삶의 현장] 내 선택과 내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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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사령관실에 근무할 때는 너무 자유로웠다. 낮에는 자고, 제3 부두에 밤 근무를 나가는 것이어서 아침 점호, 조회, 하기식, 저녁 점호, 변소 청소, 내무사열 등이 없고 밤낮없이 외출하는 편한 군대 생활이었다. 낮에는 자야 하는데 밝은 낮에 늘 잘 수 없던 나는 외출증도 없이 시내를 다니다가 헌병에게 붙들리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관보에 실려도 날 벌주는 사람이 없어 괜찮았다. 그래서 늘 진급에서 누락되고 제대할 때까지 나는 일등병이었다. 그러나 이 편한 군 생활은 일 년 반이 계속되지 못했다. 사령관이 바뀐 것이다. 우리는 영내에서도 미움의 대상이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나는 어디 간들 잘 대접해 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령부 내 법무부로 부처 이동만 하였다. 

그때부터 고생은 시작되었다. 모든 점호에 참석해야 했고 나는 일등병으로 신병과 함께 궂은 일은 도맡아 해야 했다. 엄격한 내무반 생활, 잔심부름. 특히 주번병(週番兵) 근무는 힘들었다. 식사 분배뿐 아니라 환자의 식사는 가져다 주고, 주번 사관이나 사령의 부식은 별도로 끓여서 바쳐야 했다. 물을 내리지 않아 주말을 넘긴 사령관의 양변기 청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매일 생활도 역겨웠다. 담배 없어? 치약 없어? 비누 없어? 하고 월급이 월등히 많은 상사가 졸병 것은 자기 것처럼 갖다 쓴다. 또 회의에 나가려는데 시계 좀 빌려 달라고 한다. 자기 것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송학교에서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올 기간사병(基幹士兵)을 뽑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구의 군사영어학교에서 3개월 연수를 받은 뒤 미국으로 보내어 연수를 받은 뒤 숙련병으로 쓴다는 것이다. 

나는 마침 휴가를 얻은 터여서 친구에게 지원서를 넣어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와 보니 벌써 지원자 명단에 올라와 있었다. 학도병 친구는 나더러 어리석다고 말했다. 학도병 복무 연한은 2년 반이 아니고 2년으로 단축된다는 말이 있는데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이었다. 또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오면, 귀국 후 복무 연한이 적어도 3년 이상이라고 극구 말렸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발을 들여놓으며 “이것은 내 선택이며 내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생각을 꺾지 않았다. 나는 평소의 열등의식을 영어를 잘해서 아메리칸 드림으로 메우고 싶었다. 

5월 초였다. 수송감실(輸送監室)에서 1차 고시를 끝내고 서울에서 최종 합격자를 뽑았는데 나는 그중에 뽑히게 되었다. 1957년 6월 초 나는 드디어 대구 부관학교의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하였다. 내가 속한 반은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교였다. 따라서 모든 일은 장교 대접이었다. 숙소도 둘이서 시내에 3개월 동안 하숙하기로 했다. 학교도 시설이 마음에 들었다. 당시는 녹음기가 별로 많지 않은 때였다. 그런데 영어학교의 어학 실험실은 각 개인에 하나씩 부스(booth)가 있어 학생들은 그곳에 들어가 스스로 공부하게 되어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교사의 영어 발음을 따라 녹음하고 잠시 테이프를 뒤로 감아서 원어민의 발음과 내 음성을 동시에 들을 수 있게 되어 발음 교정을 잘할 수 있게 된 실험실이었다. 당시 자기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흔히 학생들은 발음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리로 자기 노래를 녹음해서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것 때문에 교관은 이어폰을 끼고 잭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습적으로 학생들의 녹음기에 꽂아서 무슨 짓을 하는지 검사하고 다녔다. 드디어 3개월 코스를 마치고 휴가로 해외 유학 발령을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그런데 군에서 연락이 왔다. 제대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1957년 10월 10일 일등병으로 제대하였다. 불신자인 나를 하나님은 그렇게 연단하셨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오승재 장로 <seungjaeo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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